"울부짖는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3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에선 해외로 밀항을 시도하던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이 해경에 붙잡혔다.

만약 저축은행 비리합동수사단의 핵심 피의자였던 김 회장이 해외로 도피하는데 성공했다면 수사가 장기화될 우려마저 있었던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김찬경 회장 검거 작전을 주도한 해양경찰청 외사수사반장 오병목 경위는 "얼마 되지않는 이자 몇 푼 더 받으려고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려야했던 노점상 상인들, 어르신들의 모습이 체포 직전까지 아른거렸다"며 "피해 금액의 일부라도 되찾게 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말했다.

물론, 오 반장 자신의 역할이었다기 보다는 '팀웍의 승리'였다는 대답과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것 뿐'이라는 진심어린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오병목 반장이 유달리 이번 작전에 집착했던 이유는 부산 근무 당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경남 남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의 통곡하는 모습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오 반장은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관할권 밖의 사건이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어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며 "당시 그 상황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남아있던 분노가 김찬경 회장 검거하는데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오병목 반장이 이번 작전을 성공으로 매듭짓기까지는 검거 6개월전 수집한 '아주 막연한 단서' 하나가 주효했다. 이 단서란 것은 바로 '주요 경제사범 하나가 국외로 밀항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첩보였지만 그가 가진 정보를 총동원해 범위를 좁혀나갔고 밀항 시간과 날짜 등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기에 이르렀다.

당일 일부는 낚시꾼으로 현장을 지켰고 일부는 선원으로 위장해 김 회장이 오를 어선에서 대기했다. 실제 김찬경 회장은 의심없이 배에 올랐고 검거 작전은 종료됐다. 김찬경 회장의 밀항 실패 소식은 연일 대서특필됐다. 오 반장의 공로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그의 막내딸이다. 오 반장은 "막내딸이 '아빠를 본받아 경찰이 되겠다'고 다부지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며 "내 가족이 자랑스러워한다는데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냐?"며 웃었다. 한편, 오병목 경위는 이번 공로를 인정받아 27일 경감으로 1계급 특진하는 선물을 받게 됐다.

/김성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