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동항운의 초대 CEO를 맡아 18년간 위동을 이끌다 물러난 이종순(75) 회장(현 CK팬아시아씨에프씨 회장)은 첫 항해를 두고 이 같이 평가했다.
'황금다리'를 세운 이종순 회장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주로 내린다. 이 회장 자신 또한 국내 첫 한·중 합작회사인 위동항운을 설립·경영한 경험과 이를 통해 한·중 양국의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첫 취항 당시 인구 20만명에 그치던 웨이하이는 지금은 300만명 가까이 거주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인천~웨이하이 항로의 성적표도 승객이 첫해 9천412명에서 2011년 14만8천414명으로, 물동량도 첫해 248TEU에서 지난해 5만1천770TEU로 크게 늘었다.
그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성공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미수교 적성국가인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크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을 '중공'이라 부를 정도로 적성국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던 시기였다"며 "심지어 북한측의 납치 위험도 100%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에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모두 첫 항차 탑승객에서 빠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카페리항로가 개설됐지만 미수교 상태에선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미수교 상태에서 양국 사이에 사람과 화물이 오고가는 기형적 상황이 한·중수교를 촉진하는 촉매제 노릇을 했다고 강조한다. 이 회장은 "위동은 전력적으로 미수교 상태에서도 입국이 쉬운 중국 교포들을 우선적으로 공략했다"며 "이를 계기로 교포들을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상이 중국에 퍼지며 동포들의 고국 방문러시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원활한 CIQ 서비스에 대한 요구와 중국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의 요구들은 자연스레 양국의 수교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