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따리상의 등장
소무역상은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소량의 물품을 직접 소지하고 국경을 넘어 다른 이웃 국가와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무역형태의 명칭이다.
한·중 소무역은 수교 이전인 1990년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 개설과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항로 개설 초기에는 이렇다 할 무역은 발생하지 않았다. 항로 개설 초기 카페리 승객 대부분은 한국 방문 목적을 가진 중국 동포들로 이들 중국 동포들은 주로 중국으로부터 한약재와 호랑이연고, 우황청심환 등을 가지고 들어와 판매했다.
동인당 우황청심환과 중국 인삼은 한국에서 팔리기만 한다면 손쉽게 목돈을 챙길 수 있는 물품이었다.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은 중국 전역에 빠르게 퍼져 당시 유일한 한·중 뱃길인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의 경우,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 2천여명이 웨이하이에 머무르며 한국으로 향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초기 고국 방문객들이 휴대품으로 들여오는 양이 심하게 많은 경우에는 세관이 압수하기도 했지만, 운 좋게 세관을 통과한 물건들은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한국에서 판매됐다.

현재 한국은 일본·중국·러시아 등과 소무역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거래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당연히 중국으로, 중국과 연결되는 카페리 항로 중 10개의 노선이 집중된 인천항은 소무역에 있어 관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보따리상의 성장과 휴대품 변화
한·중 카페리 운행 초기, 인천항을 통해 입국하는 여행객의 휴대품은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카페리업계에 따르면 1990년 한국을 방문하는 카페리 여행객들은 주로 조선족 동포들이 차지했다. 한·중 소무역 초기, 당시 중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 동포들이 한국으로 들여올 만한 품목들이 마땅치 않았다.
이들의 입국 휴대품은 청심환, 호랑이연고와 같은 간단한 상비약과 한약재, 인삼 등이 주를 이뤘다. 반면 이들은 인천항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갈 때는 부피는 작지만 많은 수량을 담아갈 수 있는 한국에서 생산한 공산품을 선호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여성용 스타킹과 넥타이, 간단한 티셔츠 등이 이들 여행객이 당시 선호했던 품목들이다. 점차 이들의 휴대품은 중국 입국시 원단, 전자제품 등으로 확대되고 한국 입국시에는 중국산 농산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소무역상의 활동은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장한다. 수교와 함께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 투자와 진출이 많아지며 한국의 공산품을 판매하는 시장도 중국 현지에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 시장의 주요 고객은 한국이 낯설지 않은 중국 거주 조선족 동포들이었다. 한국 기업이 상당수 진출하며 그에 따른 한국과 중국 사이의 신속을 요하는 물류 운송 수요 또한 증가한다. 이에 따라 신속한 통관이 가능한 소무역상을 통한 '핸드캐리'가 각광을 받는다.
이들 소무역상의 물건은 중국 생산공장으로 보내는 생산용 '샘플'이 상당수 차지하기 시작한다.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과 기업 사이의 거래가 많아지다 보니 초창기 활약하던 화교 출신 소무역상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무역상들은 믿을 만한 현지인 내지는 한국인에게 일거리를 맡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기 시작했다.
1997년 한국은 IMF를 맞으며 일자리를 잃은 한국인이 대거 소무역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내 의류 재고품이 대량으로 수출됐고, 국산 생필품도 주요 수출 품목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던 품목들은 농산물이 대부분으로, 면세 통관 규제가 약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참깨나 고추 등이 주를 이뤘다.
현재는 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사용할 원단과 단추 지퍼 등 부자재와 의류 샘플, 기계 전자부품 등이 한국에서 수출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양국 간 가격차가 큰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 위법과 합법을 넘나든 소무역상
보따리상을 통해 이뤄지는 소무역은 비합법적 성격을 갖는 무역행위다. 쉽게 말하면 불법이라는 얘기다. 국경을 넘을 때 관세를 면제받는 개인 물품들이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판매 행위가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명백한 위법행위다. 때문에 관계 기관에서는 소무역상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는다.
이처럼 위법이라는 소무역의 특성 때문에 통관 규제가 강화되거나 면세 범위가 축소되면 소무역상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한국 농민의 반발이 커지며 한국 측에서 면세 범위를 축소하자 중국도 규제 강화에 나서며 소무역상의 입지는 점차 좁아진다.
규제 강화 등 소무역상의 활동에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초기 개인상인 중심으로 움직이던 소무역은 점차 조직화된다.
개인이 상품 구입·판매, 선표 구입, 통관 등을 모두 했던 것과 구별해 조직화된 단체 상인은 단순 운반책(따이공)과 책임자로 나뉘어 활동한다. 관세를 피하며 수반되는 위험부담은 소무역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김성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