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실히 장애인 사역에 임하는 에이블 아트센터 장병용 이사장. 그는 전문작가의 발굴 육성과 보다 넓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이자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들의 작품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역사에 기록된 명작을 감상할 때조차 느끼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고도 한다. 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은 간혹 이렇게 과대평가된다.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장애를 극복하고'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대게 그런 평가는 비장애인들의 동정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몸의 불편이 예술성을 말살시키지는 못하는 법. 그러니 장애인이 놀랄 만큼 예술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보인다 해도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그래도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호들갑 떠는 이가 있다면, 장애등급판정 떼고 예술로만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사)에이블아트센터의 장병용 이사장이다.

■ 어엿한 프로작가들

조민서군은 '공룡작가'다. 그의 공룡캐릭터는 지난 6월 경기도 문화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스케치북에 정지돼 있던 그의 공룡들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거쳐 역동적인 움직임을 얻었다. 전당에 그의 작품이 상영됐을 때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은 그의 공룡그림이 들어간 상품이 제작, 판매되고 있다. 김태호군도 미술전시회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바빴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같이 작업하는 작가들뿐 아니라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경기도미술관에 전시됐다.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그의 작품은 단번에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에이블아트센터의 소속 작가들은 1년 내내 바쁘다. 전반기 공연을 끝내자마자 회화작가들은 전시회 작업을 시작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매년 열리는 대한민국 장애인 음악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장 이사장도 동분서주한다. 음악을 공부했고, 목사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세상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들이 활동할 무대를 마련하느라 바쁜 와중에 가끔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자주 무관심에 서러워한다. 장 이사장은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 10년이 걸렸지만, 살림은 늘 벼랑끝이고 조금만 삐끗하면 사업이 전면 중단될 정도로 아직 불안정하다"며 "그래도 이곳이 좋다며 대구에서도 오시니 어떻게든 계속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친구

장 이사장은 20대 후반까지 장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20대 후반 친구의 죽음을 통해 그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아프게 배웠다. 그가 시골마을 부목사로 있을 때, 갈 곳 없고 가난한 친구와 함께 살게 됐다. 그림 그리는데 재능이 있는 장애인 친구였다. 3년을 함께 살다 그 친구의 재능이 아까워 여주 도자기 공장에 취직을 시켰다. 그러나 그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이사장 앞으로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살의 동갑내기 장애인 친구가 남긴 글은 절절한 절망의 몸부림이었다. 장 이사장은 "그 일을 겪은 후 친구의 성장과정을 추적해 봤고, 그 친구의 죽음은 구조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죽는 게 너무나 당연한 구조였다"고 읍소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1차적인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교육, 직업, 결혼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막히는 2차 장애, 이로 인한 우울증, 성격장애, 무기력증 등 정신적인 3차 장애까지 갖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친구의 사례는 장애인 문제의 총체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후 장 이사장은 일생의 목표를 정하고 지금까지 성실히 장애인 사역에 임하고 있다. 10여년 전 달랑 2천500만원 종잣돈을 들고 사업을 도모, 6년 동안 교인들과 바자회 등을 통해 에이블센터 부지를 마련했다.

후원활동을 통해 건축을 시작했지만 돈이 없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해 에이블센터는 본격적인 기능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곳도 없었지만 필요없는 곳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 이사장 손에 들린 사업계획안이 참 많다.

■ 이제 한 걸음 앞으로

에이블센터 상주작가들은 1주일에 3차례 수업에 참여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작품활동하는 데 쓴다. 수업이라고 해서 그림그리거나 도자기 굽는 방법을 '배우는' 게 목적은 아니고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을 하다 자신이 '꽂히는' 분야가 있으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새로운 재료나 기법을 소개하는 정도가 에이블아트의 역할이다. 장 이사장은 "이곳에 오기 전에는 방안에서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자신만의 캐릭터나 부호, 글자 등을 반복해서 그리던 작가들이 많다"며 "강사와 서포터들은 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곳이니 상주작가로 들어오는 것도, 강사나 서포터로 활동하는 것도 '아무나'는 안 된다. 실력은 기본이고, 예술성과 사명감은 필수다. 여기는 '미술학원'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장 이사장은 "복지관 수준의 미술 교육을 생각하면 안 된다"며 "전문작가들이 더 넓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지금은 에이블아트센터가 단 하나뿐이라 어디 연계해서 활동할 곳도 없지만 이곳을 모델로 정부에서도 센터를 만들 계획을 세웠단다. 최근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다녀갔다는데 장 이사장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정색하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에이블아트에 대한 철학, 정신, 개념,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하라고. "작가들이 장애를 잊고 오롯이 작가가 되는 곳을 만들어 줄 때 비로소 우리는 에이블아트라는 또 하나의 예술장르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을 일일이 덧붙여야 하니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커가는 작가들 보는 즐거움에 힘들 줄 모르는 듯하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수원로 617번길 9 (070-8672-1077)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