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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펜싱 은메달 단체전 첫 쾌거. 한국 여자 펜싱 대표팀의 '숨은 진주' 신아람(계룡시청)이 31일 새벽(한국시간)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에페 개인전이 열린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 피스트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신아람은 5-5로 맞선 채 돌입한 연장전에서 종료 1초 전 상대에 찌르기를 허용해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에게 5-6의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AFP=연합뉴스 |
특히 한국은 이번 올림픽 펜싱 경기 초반부터 남현희(31·성남시청)의 역전패와 신아람(26·계룡시청)의
억울한 '1초 파문'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 선수들이 똘똘뭉쳐 환희와 영광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놀란 신아람의 '멈춘 1초'와 경쟁 선수들의 패배
펜싱은 대회 초반 메달 레이스에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받았지만 자꾸 꼬여만 갔다.
최고 스타로 기대를 모았던 남현희는 중반까지 경기를 잘 풀어가고도 후반 들어 상대의 공세에 어이없이 무너져 준결승과 3-4위전에서 연달아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상위 랭커들이 대거 포진한 남자 사브르 대표팀 선수들도 나란히 16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대회 사흘째에는 신아람이 역대 최악의 오심 스캔들로 온 국민들을 황당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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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펜싱 은메달 단체전 첫 쾌거. 여자 펜싱 사브르 국가대표 김지연이 2일 영국 런던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러시아 선수를 이긴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역대 올림픽 5대 오심'으로 꼽힐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었으나 국제펜싱연맹(FIE)은 끝내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시간 넘게 피스트에 앉아 울먹이던 신아람은 이후 3-4위전에서도 패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신아람 오심으로 똘똘뭉친 선수들… '신(新) 효자 종목' 등극
대한체육회를 비롯 국제펜싱연맹 등 어른들의 연방 실수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선수들이었지만 새로운 각오로 전환점을 맞았다.
선수촌에 모여 '우리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결의를 다진 선수들은 신아람 사건이 터진 이튿날부터 놀라운 메달 레이스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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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펜싱 은메달 단체전 첫 쾌거.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 선수들이 4일 영국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에서 단체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환,오은석,구본길,원우영. /런던=연합뉴스 |
다음날에는 남자 에페 정진선(28·화성시청)이 개인전 동메달을 따내더니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 나선 김지연(24·익산시청)이 '깜짝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세계를 놀라게했다.
한국 여자 선수 사상 첫 금메달이자 사브르 종목 사상 첫 메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의 성적(금 1개, 동 1개)을 훌쩍 넘어선 선수단은 거칠 것이 없었다.
여자 플뢰레 대표팀이 단체전 3위를 차지하더니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단체전 정상을 석권하며 두 번째 금메달 소식을 알렸다. 이어 대회 마지막 날에는 '1초 오심'의 희생자인 신아람을 필두로 한 여자 에페 대표팀이 단체전 은메달까지 따내면서 한국 펜싱을 세계에 알렸다.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낸 한국은 4일까지 이탈리아(금 2개,은 2개, 동 2개)에 이어 종합 순위 2위에 올랐다.
한국이 출전하지 않는 남자 플뢰레 단체전이 남아 있어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하지만, 출전국 중 최상위권의 성적은 예고된 셈이다.
특히 한국은 출전한 9개 종목 중에서 남자 사브르 개인전을 제외한 8개 종목에 4강 진출자를 배출해 세계 펜싱계의 '새로운 강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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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펜싱 은메달 단체전 첫 쾌거. 정진선 4강 진출. 정진선 선수가 1일(현지시간)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에페 개인전 8강전에서 요에르그 피들러(독일)에게 15-11로 승리를 거두고 기쁨의 포효를 하고있다. /AP Photo=연합뉴스 |
한국 펜싱이 세계에 우뚝선 배경에는 부쩍 늘어난 투자를 꼽을 수 있다.
2003년 대한펜싱협회장으로 조정남 회장이 취임하면서 SK 텔레콤의 지원을 받으며 경쟁력을 향상시킨 한국 펜싱은 2009년 손길승 회장이 취임하면서 연간 지원 규모가 12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지원이 늘면서 해외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경험을 쌓은 선수들은 서서히 종주국인 유럽 강호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여기에 지도자들의 열정이 더해지면서 유럽과는 다른 '한국형 펜싱'이 뿌리를 내렸다.
2009년 대표팀 총감독 자리에 앉은 김용율 감독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이번 대회에서 입증됐다. 움직임이 많지 않고 팔놀림으로 승부를 하는 유럽 선수들에 비해 한국 선수들은 끊임없이 앞뒤로 빠른 발을 움직이며 상대의 리듬을 흔들었고, 역습으로 상대 선수들을 제압했다.
물론 이런 능력을 키우려면 남들보다 2배 이상 움직이면서도 속도를 잃지 않을 강인한 체력이 필수다. 선수와 코치들은 휴일을 반납한 채 선수촌에서 지독한 훈련을 거듭해 이런 체력을 만들어냈다. 이번에 메달을 딴 선수들은 하나같이 "지난 1년 동안 외출이나 외박을 거의 하지 못했다"고 혹독한 훈련의 모습을 공개했다. /신창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