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ians) 시대다. 백과사전 속 텍스트를 외워야만 뽐낼 수 있었던 지식도 이제 언제 어디서든 손 안의 작은 상자에서 10초 후면 눈 앞에 나타난다.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음성인식으로 말이다. 스마트폰 속 번역기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통역사 없이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에 국한된 예지만 이렇듯 우리의 삶은 지난 10년과 비교해 놀랍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부부 관계만큼은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부 관계 개선에 필요한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 관계를 진화하려 하지는 않고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다 어느 순간 접시라도 된 것처럼 '쨍그랑' 깨지기만 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1년 5월 말 기준 이혼한 부부만 전국적으로 4만6천500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경기도만 1만1천300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호모 모빌리언스를 살아가는 시대의 이상적인 부부는 어떤 모습일까. 부부, 이제 변해야 한다.
# 결혼의 이유가 달라졌다
부부는 결혼을 해야만 발생하는 관계다. 과거에는 종족번식을 위해 결혼을 했다. 또 딸들의 경우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이란 제도를 택하기도 했다.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의식주를 제공받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얼굴도 모른 채 부모의 뜻에 의해 결혼을 하기도 했다. 과거의 결혼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자발적 선택으로 변화됐다.
때문에 현 시대는 먹을거리를 해결한다고 해서 결혼 생활에 만족을 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오늘날 결혼 생활에서 생계유지는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특히 가사와 육아만을 전담했던 과거의 여성에 비해 슈퍼우먼을 요구하는 시대다.
# 부부간 의사소통 문제
결혼의 전제조건은 사랑이다. 하지만 이 사랑을 깨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 중 제일이 '말투'에서 비롯된다. 최악의 소통방법은 비난이다. 특히 남성의 경우 부지불식간에 가정에서 아내를 부하 직원 부리는 듯한 말투로 비난한다.
오은영 (정신과 전문의·오은영소아청소년 클리닉)원장은 "가정은 사회생활이 아니다. 부부는 사랑을 전제로 정서적 상호작용을 이뤄가는 관계임을 명시해야 한다"며 "논리적인 지적과 비난이 아닌 정서적 교감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편들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갑자기 없던 야근 핑계를 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고집도 부린다. 아내의 말 앞에서는 더욱 고집을 피우며 자신의 의견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심각하면 "아, 됐어!"라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아내라고 예외는 아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잔소리, 일명 쪼는 것이 가장 문제다. 아내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남편을 쫓아다니며 닦달하는데 남편은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회피한다. 아내는 심리상 남편이 자신의 얼굴을 바라봐 주고 소통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달리 말해 소통의 부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로 성립된다.
이 경우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회식자리에 간 남편에게 아프다며 빨리 귀가하기를 바라는 등이다. 심화될 경우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남편의 행동을 추적한다. 하지만 대개의 남편들은 이를 '아내의 집착' 혹은 '감시'라고 생각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 반드시 피해야 할 소통방법
부부간 생활에서 반드시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이런 말들은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 오 원장은 "부부 관계는 접시와 같아서 이가 나가도 그런 대로 쓰이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언젠가 쨍그랑 깨지는 날이 오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반드시 피해야 할 소통방법은 본인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원가족(시댁·친정 등)에 대한 험담이다. 원가족의 삶은 아내 혹은 남편이 노력을 한다고 해서 절대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사정에서 험담을 하면 참담해지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다. 가령 예를 들면, "친정어머니에게 뭘 배웠어", "당신네 식구들은 하나같이 왜 그래" 등이다.
또 학력에 대한 이야기와 외모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금기다. 현대인은 누구나 주관적 잣대인 외모와 학력 콤플렉스를 갖게 마련. 배우자는 이미 학력을 감안하고 만난 관계 아닌가.
부부 관계는 존중과 호혜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오 원장은 "(부부 관계는)기본적으로 존중을 해 줘야 한다. '당신 말이 맞아'가 아닌 '당신 말을 들어 보겠어'가 답이다"며 "이는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인데 갈등이 있을 때에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의할 점은 말을 듣다 보면 다른 의견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럴 때에도 절대 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을 때에는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제시하는 건 옳지 않다. 대신 "오늘 잘 들었어, 나도 생각해 볼게"라고 말한 후 다음에 진정된 후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내용에 동의가 되든 안 되든 정서적으로 공감을 해야 한다. 아내(남편)에게 "어쨌든 당신 너무도 힘들었겠어"라고 말하는 등의 정서적 공감을 표출해 주는 게 중요하며 정서적 공감 표출은 서로 의견이 달라도 얼마든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부들은 이를 하지 않고 먼저 논쟁하려 든다.
오 원장은 "가족은 토론장이 아닌 사랑을 전제로 하는 관계다. 정서적으로 위로를 해 주지 않으면 내뱉은 말이 화살이 돼 꽂힌다. 꽂히면 모욕이 되고 모욕을 느끼면 애착을 손상시킬 정도의 상처를 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