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번씩 맞게 되는 명절이지만, 한가위는 언제나 풍요롭고 넉넉하다. 유례없는 가뭄과 연이은 태풍 속에서도 들녘의 곡식과 과일은 변함없이 결실을 맺고, 전·월세 걱정, 반찬 걱정에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운 고단한 삶이지만, 정겨운 얼굴들과 마주하면 언제나 새로운 힘이 솟는다.
모진 비바람이 있었기에 수확의 기쁨이 커지듯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고난과 역경 역시 밝은 미래로 가는 작은 장애물일 뿐이다. 돌아가면 반겨줄 고향이 있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번 한가위는 연말에 치러질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가장 큰 화제가 될 듯하다. 대선 후보들의 팽팽한 지지율 추이와 여야 후보의 면면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조심스레 대선판도를 점쳐 보는 것도 모처럼 만난 가족들을 대화속으로 불러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연령대 별로 제각각인 지지 후보들에 대해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세대간 격차를 해소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추석은 전국 어디에서나 환한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주요 도로와 고속도로는 어김없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겠지만,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푸른 하늘을 실컷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막히는 차안에서 모처럼 가족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다양한 테마로 운전자를 맞는 휴게소들도 적지 않다. 평상시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이 곳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석이 주는 '보너스' 중 하나다.
짧은 연휴기간으로 인해 고향길을 포기한 사람이라면 차례를 지낸 후 평소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가족 나들이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텅빈 도심 고궁을 찾아도 좋고, 경인지역의 올레길, 둘레길을 찾아나서도 좋다. 대부도도 좋고 민속촌도 좋다. 에버랜드, 서울랜드를 찾아 아이들에게 점수를 따는 것도 추천할 만한 일이다. 놀이공원들에서 내놓은 이벤트는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하다.
경제 불황으로 빡빡한 일상이지만, 이럴 때 일수록 전통 장터나 시장에 가보는 것도 추천할만 하다. 장터에는 아직도 인정이 살아 있고, 명절을 맞아 다채로운 볼거리도 준비돼 있어 고향의 옛 정취를 맛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일 수 있다.
그마저도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보자. 추석 대목을 겨냥한 영화 프로그램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고, 부부는 연인처럼, 형제는 친구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차례상 준비를 거들고 난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즐길 TV프로그램도 다채롭다. 다만 채널싸움은 하지 마시길, 추석이니까. 풍요롭고 넉넉한 한가위이니까….
/송수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