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이 꿈꾸는 나라―높은 문화의 힘'의 네 번째 대담 대상자는 서울시 하자센터의 전효관(50) 센터장이다.
전 센터장(사회학 박사)은 하자센터 부소장, 문화예술교육 기획운영단장,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대표,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이 밖에도 많은 시민사회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시기에 정부 관련 정책의 자문 역할을 담당했다. 대담은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이 맡았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전 센터장과 이 본부장은 사회적 경제와 문화예술의 만남,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 등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 ┃편집자 주
졸업생 일자리 모색하며 청년 문제 본격 고민
공공영역 열어 실제로 일 경험할 수 있게해야
실제론 개발인데 문화로 포장됐던 정책 많아
'삶이 있는 시대' 만들 혁신 플랜 나와야 한다
이 본부장(이하 이) : 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야 센터장님을 잘 알지만 일반 독자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대담의 도입 삼아 센터장님과 하자센터에 대해 소개하면.
전 센터장(이하 전) : 전공은 사회학이다. 문화쪽 관심은 하자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갖게 됐다. 1999년 IMF 때였다. 당시 조혜정(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선생이 홍대 앞 작업자들도 일자리가 없다, 문화쪽과 사회운동을 결합하면 새로운 샘플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가담했다. 사회 운동기가 지나고 문화의 시대 왔다며 그런 활동들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고 음악과 영상, 디자인 등 인디 문화계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러한 작업만으로는 IMF를 버텨내긴 힘들었다. 때문에 청소년 교육 등 사회적 경로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공방이자 작업장으로 하자센터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문화 작업자들이 청소년들이랑 작업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청소년 문화가 당시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자연스레 문화 분야와 교류가 많아지게 됐다. 문화 활동가라기보다는 문화 활동가들을 코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 하자센터는 일종의 청소년문화회관이지만 기존의 회관과는 다른 점이 있다.
전 : 초기 하자센터는 대안학교쪽으로 인식됐다. 얼마 후 사회적 기업을 양성하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요즘 인식은 청소년이 아닌 청년문제에 관여하는 곳으로 변했다. 처음에 대안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대안학교 졸업 후 대학을 안 가는 친구들의 일자리를 모색했다. 그러다가 사회적 기업 노리단 같은 것을 만들었다.
사회적 기업 정책이 생긴 후 자연스럽게 10여개 사회적 기업을 양성해 인증 사회적 기업으로 배출했다. 이때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이 유입됐다. 청년들 문제가 침체기로 가고 있는 지점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는 것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하자센터의 힘은 직원들과 함께 현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고 학습한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과거와 다른 양상의 예술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는 주류 예술이 있고, 인디 예술이 있어서 작가적 의식이 굉장히 내면화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요즘엔 작가 의식은 약화되지만 일상의 사람들과 거리낌없는 작은 작업을 한다.
이 같은 부분에서 새로운 작가군(주체)이 생긴다. 이런 주체들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고, 대상에 대해 환기하면서 변화 부분을 보는 게 하자센터의 성장·혁신의 동력이다. 또한 어떤 특정 계에 속하지 않은 점도 장점이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문화 분야는 물론 사회·경제·복지 분야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계를 넘나들면서 사람들과 연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이 : 인천에도 청소년복지회관이 있다. 인천과 하자센터의 차이점은 어른의 시선과 청소년의 시선으로 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하자센터는 청소년 스스로 고민을 통해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부분들을 통해 일을 처리한다.
전 : 하자센터에선 어떤 특정한 시선이 아닌 지금 어떤 게 필요한 문제인가, 시대 변화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하자는 하나의 문화적 세팅이다. 사회적 기업을 배출하고 성공시킨 노하우·마케팅 기법 등 특수한 것이 하자센터에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분위기와 세팅, 완충장치 등을 통해 함께 만들어간다. 각 지역에서도 이 같은 고민을 통해 하자센터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관하고의 특수한 관계성은 있다. 하자센터는 산출(성과)에 자유롭다. 평가 등수는 서울시 기관 중 하위권이다. 하지만 점수보다는 활동가들에게 약간의 자율성을 주면서 자기 스스로가 기획할 수 있다는 부분이 이곳의 장점이다.
이 : 각 지역에서도 이 같은 자유로운 실험들이 일어나야 기존의 질서로 규정되지 않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부분들이 생길 것이다. 또한 문화 분야에서 일해보려는 젊은 세대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나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 : 저희 세대와 비교하면 현재 젊은 세대의 전문성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 전문성이 굉장히 제한된 영역과 시야속에서 발휘된다. 콘텐츠적인 전문성은 있는데 맥락에 접합이 안 된다는 점이다. 청년실업문제를 복지나 수혜 문제로 푸는 방법도 좋지만, 실제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을 열어서 사람들이 일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쌓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의 불안감이 너무 커졌다는 부분에 있다. 불안한 시대이지만 문제를 풀어보는 경험들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 저의 경우도 돌이켜 보면 커리어를 개발하기 위해 일을 한 적은 없다. 일을 하다 보니 커리어가 생겼다. 요즘 어려운 조건임은 인정하나, 문제에 뛰어들어서 기획을 하거나 사람들과 엮이면서 문제 자체를 풀어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 : 젊은 친구들이 판을 벌일 수 있도록 시에서 기회를 줘야 하는 등 공공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했는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화의 위기 혹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전 : 실제로 개발인데, 문화로 포장되는 부분이 많았다. 사람들의 삶과 관련성이 깊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삶의 위기 국면에서 중산층이 분개했다. 문화적인 역량은 문제의 해결과 연결되지 않으면 문화(예술)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갖고 사회적 의미에서 포지셔닝(positioning)을 하기 어렵다. 솔루션(solution)으로서의 문화로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 마을을 얘기하는 것은 관계를 재구성하지 않고는 문제를 풀어내기 힘드니까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공동 작업을 하고 활동하자는 것이다. 현 세상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경제·정치·정책 등 정량적으로 문제를 푸는 시스템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문화는 그런 문제들을 유연하게 풀 수 있는 방식이다. 즉, 문화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연동되어야 한다. 특정 문화를 지칭하는 장르 예술도 당연히 있다.
이 :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점검해 볼 때, 문화와 관련한 의제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전 : 한 사회의 리더가 문화적 소양과 관점 같은 것들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 세상을 권력과 경제의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고, 문화적 관점을 병행한 사람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문화적 정책과 토대,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경제·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데에는 삶의 문제와 영혼의 문제도 있다. 이런 것을 다루는 게 문화다.
삶의 시대로 가야 하는 게 분명하다. 삶이 있는 시대를 어떻게 만들거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참여정부 때도 한계가 있었지만, 사회정책을 문화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사회정책을 문화적으로 디자인하려면 문화적 관점이 들어가기 때문에 문화예술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 같은 제도적 사회 혁신과 문화적 사회 혁신 부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국가적 의지가 담보됐으면 좋겠다.
무슨 위원회 혹은 대통령 산하 기구 등을 둘 수도 있으며, 이 같은 어젠다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삶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걸맞은 수준의 문화적 사회 혁신 플랜 등이 있어야 한다.
이 : 핵심은 문화적으로 형식화된 삶이 아닌 진짜 삶과 문화가 마주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차기 정부에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전 : 성공적이거나 성과가 있지 않았지만 참여정부 때 문화정책이 한 발을 내디디려 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선 개발을 앞세우다 보니 문화정책으로 어떤 일을 했다는 느낌은 없다. 지원 부분의 손질 등은 눈에 띄며, 전통시장 사업 등 사업들도 많이 있었다. 크게 봤을 때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드러내는 사건 같은 것은 없었다. 다음 정부로 가면 문화적인 리더십이 중요한 시대로 간다.
요즘 '전환기적 질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환기적 질서에선 어떤 답이 없다. 사람들이 상황을 공유하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으면 절대로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시기에 사람들의 관계를 도모해 문제를 풀어내는 문화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리/김영준기자
공식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여러 세대 창의적 학습 추구하는 배움터
■ 하자센터는
1999년 12월 18일 개관한 하자센터는 연세대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공식 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지만, '스스로의 삶을 업그레이드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하자' 등 자율과 공생 원리를 모토로 하기에 '하자'로 불리고 있다.
하자센터에서는 선생님, 강사, 학생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자 스태프는 청소년과 대중을 위한 판을 짜고 돌린다는 의미로 '판돌'이라 부른다. 하자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소년을 '죽돌'로 부르는데 죽치고 앉아 자기주도적인 작업을 해낸다는 의미다. 판돌은 일방적인 수업이나 강의, 사업을 하지 않고, 죽돌과 함께 기획하며 배움을 주고받고 소통한다.
아프리카의 '한 아이를 온전하게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하자센터도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어울려 한 사람을 위한 창의적 학습을 추구하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