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 강원 횡성 청태산(1천194m)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10~11일(1박2일)

■ 등산로

1코스~헬기장~정상~3코스~숲길~주차장 (4시간)

2코스~헬기장~정상~3코스~숲길~주차장 (3시간 30분)

■ 교통

영동고속도로~둔내IC~둔내(장평)방면으로 약 1㎞~현대성우리조트 방면으로 7.7㎞ 이동~청태산 자연휴양림 입구 (둔내 IC에서 휴양림까지 10㎞, 약 15분소요)

청태산 자연휴양림에는 낙엽송숲길 A·B, 활엽수숲길, 자작나무숲길, 참나무숲길 등 5개 숲길 등 숲 탐방로 5개 코스 22㎞와 데크로드 1㎞ 등 23㎞의 치유숲길, 생태연못과 야생화원,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11동 11실)과 산림문화휴양관(2동 29실), 운동시설인 숲속수련장 3동이 숲속에서 치유의 길을 열어놓고 있으며 30여개의 크고 작은 야영데크와 취사장, 화장실, 샤워실을 겸비한 캠핑장도 있다.

솔향 취해 침엽수림 걷다보면
푸른이끼 매력적인 계곡 도착
태조 이성계 '청태산' 휘호 내린
절경에 감탄 저절로 나오기도
야영데크·샤워실 갖춘 캠핑장
가족단위 여행객 머물기 좋아
산림문화휴양관도 숙박 가능

#수도권에서 가까운 가족 캠프장으로 유명한 청태산


무작정 짐을 꾸려 떠난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흐렸다 개기를 반복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비치자 아무런 생각없이 차를 몰고 달려온 곳. 거기에 청태산이 있었다. 평소 주말이면 예약 현황판을 가득 메웠을 캠핑족 중 날씨 영향에 해약한 자리 하나를 냉큼 꿰어차곤 십분이면 족한 텐트치기를 마치고 한숨을 돌렸다. 스산한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고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배라도 불릴 요량으로 텐트 밖으로 나선다. 어느새 산속은 짙은 어둠속으로 한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하나 둘 존재를 밝히는 등불이 숲속 나무 사이사이로 비치고 잔잔한 말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가느다란 빗방울이 텐트를 두들겨 대는 소리를 지나 취사장으로 향한다. 가족을 동반한 캠퍼들이 각종 장비와 요란한 취사도구를 들고 집합한 곳이다. 지난 여름에 태워먹고 바위에 찍혀 울퉁불퉁한데다 손잡이마저 부러진 내 코펠은 어디에도 맘 놓고 놓을 데가 없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중얼거리며 씻어온 쌀을 버너에 올려놓고 한숨을 돌리자 코펠 때문이었는지 최치원의 칠언절구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 떠오른다.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하니 : 층층 바위돌에 분출하고 겹겹 산에 포효하는 물이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이라 : 가까운 곳 사람의 말소리조차 구별하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하여 : 시비 가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서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이로다 : 일부러 흐르는 물더러 온 산을 돌게 하네

빗소리에 시비분별 모두 내려 놓는 순간이다.

#푸른이끼 가득한 골짜기

이른 아침 비개인 하늘이 휘황찬란한 금빛 고운가루를 뿌려댄다. 물기 머금은 숲속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거닌다. 기억력이 약한 청설모의 실수인지 씨앗 가득한 잣송이가 '툭' 하고 발에 채인다. 황금빛 낙엽송 솔방울도 발에 채인다. 사각거리는 낙엽이 아니라 솔향기 가득한 침엽수림과 푸른이끼 가득한 계곡으로 길을 내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관동지방으로 가다가 들르게 된 청태산….

푸른이끼가 가득한 큰바위에서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곤 아름다운 모습과 크게 푸르른 기상이 돋보여 '靑太山'이란 휘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럴만 하단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산책로 구간을 벗어나 계곡을 따라 오르자 금세라도 쓰러질 모양으로 심장이 벌떡댄다.

입고 온 옷을 몽땅 벗어도 시원찮을 열기에 헉헉 대며 오르자 능선 삼거리다. 두 살배기 아기를 등에 업은 새색시가 쉬었다 떠난 나무의자를 통째로 세내어 아예 드러누웠다. 하지만 정상으로의 길은 밋밋하리만큼 수월하다. 능선길 따라 곱게 수놓은 듯 형형색색의 가을 낙엽이 가득한 길이다.

#힐링캠프로 최적의 환경을 조성중인 휴양림

참으로 볼 것 없는 정상이건만 쏟아내며 올라온 땀이 아쉬워서 의자에 앉아 남녘의 백덕산 자락을 한없이 바라보다 가파른 계곡의 2코스를 피해 1코스로 내려가기로 하고 헬기장을 지나 본격적인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이번엔 끝없는 나무계단의 연속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계단이다. 몇몇의 유산객(遊山客)들이 스쳐간다.

하나같이 홍조를 띤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산책로로 내려서자 눈 오는 날이면 비닐포대 한 장으로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잔디밭이 햇살만큼 눈부시다. 캠프장에 가까워지면서 낯익은 코펠이 낯선 아이들 손에 들려져 계곡을 헤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텐트 밖에 내 놓은 걸 버리는 것으로 착각했나보다.

"얘들아 그거 버리는 거 아니다…"를 목구멍으로 삼키며 뺏어 들고 보니 누가 봐도 버릴 때가 된 모양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인가. 다시 아이들 손에 쥐어주곤 텐트를 걷어 차에 싣는다. 동강에서 밭둑을 태우던 할아버지가 낸 산불을 껐던 추억과 한겨울 황병산에서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눈을 퍼내던 코펠을 추억으로만 놔두고 간다.

집착도 욕망도 나의 만족을 위한 것들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며 오는 길에 등산장비점에 들러 반짝이는 코펠 하나를 장만하였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길까. 산에서 얻어가는 추억들 마다 기분 좋은 것들로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