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대생이 심야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사망하는 등 인도 뉴델리에서 성폭행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치안 불안과 여성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 등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29일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너무 낮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인도는 결혼할 때 여성이 지참금을 가져가야 하므로 가난한 집안에서는 딸이 짐으로 여겨진다.
성감별 낙태가 흔해서 남성 대비 여성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이고 아이들이 자랄 때도 아들은 더 잘 먹고 교육도 잘 받는다.
가정 폭력에 관대한 문화도 성폭행이 많은 이유로 꼽힌다.
반부패와 여성권익에 관한 무료정보제공 서비스인 '더 로터스 트러스트로'(The Reuters TrustLaw)는 가정 폭력이 용인된다는 점에서 인도를 올해 여성에게 최악의 국가로 꼽았다.
유니세프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15∼19세 인도 소년의 57%와 소녀의 53%가 부인은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최근 국가 가족건강 조사에서도 상당수 여성이 남편에게 맞는 것은 자신 탓이라고 답했다.
여성 경찰이 드물어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신고를 꺼리는 점도 지적됐다.
인도의 여성 경찰 비율은 약 7%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고 그나마도 순찰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타임스오브인디아가 전했다.
최근 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한 여성의 가족은 "남성 경찰들은 조서를 작성하지는 않고 구체적인 성폭행 과정만 물었다"며 "마치 또다시 성폭행을 당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난했다.
이뿐 아니라 일반 서민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력이 매우 부족하다.
델리는 경찰관이 8만4천명이나 되지만 이 중 3분의 1만 일반 경찰 업무에 투입되고 나머지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외교관 등 고위 인사들의 경호를 담당한다.
타임스오브인디아에 따르면 경찰관 1명당 인구가 200명인데 고위 인사 1명당 경찰관은 무려 20명이다.
성폭행 사건 기소율이 너무 낮으며 판사 부족으로 인해 사법 절차 진행 속도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다.
길거리 조명이 어둡고 여성용 화장실이 부족해 여성들이 다니기엔 공공장소가 안전하지 않은 것도 이유로 분석됐다.
또 성폭행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탓하기보다는 피해자의 옷차림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
1996년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도발적인 차림새가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답했다.
최근 버스 집단 성폭생 사건 이후 라자스탄의 한 의원은 사립학교 여학생들의 치마 교복 때문에 성폭력 사건이 늘고 있다며 이를 금지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인도에는 성폭행에 대해 전반적으로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가 퍼져 있다.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이 발생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에 개입하지 않고 다른 곳을 쳐다본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피해자를 비난하기 때문이다.
남성 정치인들은 성폭행 문제를 경시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를 더 키우곤 한다.
국회의원인 아니수르 라만은 최근 한 여성 장관에게 성폭행당하는 대가가 얼마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마을 원로 등이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관습도 성폭행을 막는데 방해가 된다.
최근 집단 성폭행을 당한 17세 소녀는 경찰이 고소를 취하하고 가해자 중 한 명과 결혼하라고 종용하자 자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