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부와 나눔은 재정 형편이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연예인들이 CF 대금으로 받은 수천만원을 쾌척하거나, 대기업 회장들이 수억원씩 기부하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서 접해도 일반인들은 별 감흥없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얘기'처럼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거액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속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을 통해 나눔은 결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오히려 나눌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질 때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플라스틱우유병에 동전 꽉 차면 '이웃에게'
화환 대신 쌀 받아 기부하는 '착한 결혼식'
타인 돕는 기쁨 배우는 '천사같은 아이들'
소소한 이웃사랑 넘치는 '우리라는 울타리'



# 우유통 할아버지의 나눔 실천

'나눔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

빈 플라스틱 우유병에 매직으로 이런 문구를 적어놓고 100원, 200원 틈날때마다 저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안양시 동안구에 사는 이상일(68·사진)씨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동네 골목과 거리를 다니며 폐지를 모은다. 그리고 폐지를 조금씩 팔아 돈이 생길 때마다 우유병에다 저금을 한다.

우유 저금통이 꽉차면 이씨는 저금통을 들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를 찾아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한다. 지난 2008년 그가 처음 기부한 돈은 1만9천150원. 아주 적은 액수지만 그는 이 돈을 모으기 위해 한 달간 영하의 날씨 속에 새벽거리를 누벼야 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총 72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폐지를 팔아 모은 성금을 우유병에 모아 기부하기 때문에 동네에선 '우유통 할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거리의 부랑자가 결코 아니다. 그는 원래 교도관 출신이다. 30년 넘게 교도관 생활을 하다 정년 퇴임 후 '씀씀이를 줄여 아낌없이 봉사하자'를 생활신조로 삼고, 남들 다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도 소유하지 않을 정도로 근검절약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폐지를 모아 왔다.

이씨는 "나눔에는 결코 귀천이 없다. 적은 금액이든 큰 금액이든 자신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다면 그 삶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라며 "나의 생이 다 할 때까지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가 기부한 성금은 끼니를 거르고 있는 경기도내 아동·청소년의 급식비 지원에 쓰였다.


# 꽃 대신 쌀로 축하해주세요

지난 9월에 결혼한 이예슬(26·사진)씨는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을 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결혼식을 남들과 다르게 뜻깊은 일로 기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예비신랑과 함께 결혼화환 대신 쌀을 받아 이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결혼식 전 지인들에게 뜻 깊은 청첩장을 돌렸다. 청첩장 말미에는 '행사 후 버려지는 일반화환을 정중히 사양합니다. 일반화환 대신 쌀화환으로 보내 주시면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씨의 결혼식장에는 화려한 꽃으로 된 화환대신 쌀 포대가 놓이기 시작했다. 쌀화환을 통해 기탁된 60만원 상당의 백미는 사랑의 열매를 통해 수원의 노숙인 무료급식소에 전달돼 따뜻한 저녁식사로 제공됐다.

이씨는 "직접적인 성금 기부는 실천하기 부담스럽지만, 결혼식의 경우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화환을 받는 것보다 쌀화환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울 수 있게 돼 무척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처럼 결혼식의 허례허식을 없애고 나눔을 실천하려는 신혼부부가 늘어나면서 일반 화환대신 쌀화환을 받는 '착한 결혼식'이 화제다.

쌀화환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반 화환과는 달리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할 수 있어 '축하와 나눔'이라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예인들이 각종 행사시 축하 화환대신 쌀을 받아 기부하는 사례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나눔 실천을 위한 좋은 방안으로 부각돼 일반인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 추세다.


# 고사리 손을 가진 기부천사들

얼마 전 수원 고색중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사진)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이웃돕기성금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6명의 학생들이 직업훈련시간에 '비즈공예'와 '비누공예'로 만든 물건을 팔아 수익금 31만5천원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것이다.

이날 기부한 성금은 올해 1학기 동안 정성들여 만든 공예품 150여 점을 교내 동아리발표회 때 교직원과 학부모, 친구들에게 판매한 수익금 전액이다. 그리고 이 성금은 수원시 관내 독거어르신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한 난방비에 쓰였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김은희 교사는 "적은 금액이라도 아이들이 직접 번 돈을 기부하고, 남을 돕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기부를 한 사례도 있다. 안양시 호계 2동에 위치한 뿌리깊은나무 어린이집 원아들은 지역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성금 22만 원을 기부했다. 이 성금은 지난 11월 학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영어마을' 행사를 통해 발생된 수익금으로 쿠킹 클래스, 과학 클래스, 스포츠 게임, 퍼포먼스 미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가 물건을 교환·판매하며 발생된 수익금 전액이다.

▲ 우유 페트병에 '나눔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는 문구를 적어 놓고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저금, 기부해 화제가 된 이상일(68)씨의 우유 저금통과 성금기탁신청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기부된 성금은 안양시 관내 독거어르신들의 난방비로 쓰일 계획이다. 뿌리깊은나무 어린이집 석윤희 원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말로 이웃사랑을 가르치기 보다는 직접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아이들이 더욱 좋아한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선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