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가장 미국적인 도시'로 손꼽는 시카고가 '살인 도시' 오명을 쓸 위기에 처했다.

15일(현지시간) 시카고 트리뷴은 "최근 미국 주요 언론과 세계 언론이 시카고 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급증했다는 소식을 연달아 보도하고 있다"며 "시카고를 미시간호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미국 문화와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알리기 위해 애써온 오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시카고 시는 2016년 올림픽 유치 도전과 201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공업도시'와 '알카포네' 이미지를 벗고 국제 도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총기 사고율이 급증하는 가운데 무고한 청소년들이 총기 폭력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시카고는 전국적인 총기 논란의 중심부가 됐다.

영국방송 '채널4'의 앵커는 최근 시카고 남부 거리에 현장 취재를 나와 "시카고에서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 수는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미군 수보다 많다"고 보도했다. 그는 "시카고에서는 총기가 곧 법"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트리뷴은 "실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면서 "총기 사고는 새로운 문제가 아닌데다 발생지역이 극히 일부에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관광객과 비즈니스 여행객들이 오가는 시카고 도심 번화가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드물다. 문제가 되고 있는 총기 사고는 주로 도심 남부와 서부에 밀집된 흑인과 히스패닉계 저소득층 거주지역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급증하는 살인율은 도시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노스웨스턴대학 저널리즘학과 클라크 케이우드 교수는 "도시 이미지가 실제 상황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면서 "언론보도의 위력과 분위기에 따라 도시에 대한 인식은 삽시간에 바뀔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우드 교수는 "명성을 쌓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평판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시카고는 '살인 도시'가 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지난 해 시카고시의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전년 대비 16% 증가한 506건이었다. 미국의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인구 수가 시카고에 비해 3배나 많은 뉴욕의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414건으로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리뷴은 이를 놓고 세계 각 언론이 자극적인 제목과 문구를 뽑아내고 있다며 영국의 BBC방송과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은 "총기로 가득찬 시카고의 또다른 피의 밤", "죽음이 수놓은 미국의 살인 도시" 등의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또 미국의 500개 공영 라디오 채널이 송출하는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 라디오 쇼'는 이번 주 시카고 총기 폭력 특집을 4회에 걸쳐 방송했다.

스티브 코치 시카고 부시장은 "이 토픽이 시카고 비즈니스 기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면서 "지난 해 시카고 호텔 투숙률은 경기불황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일자리 증가로 실업률은 낮아졌으며 시카고에 본사를 둔 기업은 2년 새 11개나 더 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도시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계량화 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 "시카고에 대한 평판이 어느 시점에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뀔지는 모를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총기 사고가 계속 이어지거나 도심지역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시카고의 위상은 붕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