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박인건 사장이 KBS교향악단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악단 분위기와 비전은

지난달 11개월만에 정기연주 재개
갈등 원인이었던 지휘자 선임 신중
단원들의 화합·협력 이끌어내고파

1세대 공연기획자인데?

바이올린 전공했지만 기획에 관심
예술의전당·道문화의전당 두루거쳐
연주 잘했으면 이렇게 안풀렸을지도

재단법인에 대하여

충무아트홀 등 재단화 수차례 경험
출연금 지원약속만 잘 지켜준다면
재원도 사업도 풍성… 장점 참 많아


숨바꼭질하듯 봄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기운에 숨어들어 언제쯤 '짠'하고 등장하면 좋을 지 가늠하고 있는 것 같은 계절이다.

더디 오는 봄에 약이 오를 수도 있지만, 이럴 때가 바로 '기다림의 즐거움'을 만끽할 좋은 때다. 한겨울 맹추위에 떨면서는 어디 감히 봄을 기다릴수조차 있었던가. 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봄은 우리에게 기대와 설렘 그리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시간을 먼저 선물해두고 우리를 만나러 오고있다.

아직은 두툼한 외투가 필요했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재)KBS교향악단 박인건 사장을 만났다. 그의 눈빛은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난해 지휘자와 단원들간의 갈등으로 매서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단원들에 대한 연민과 믿음도 엿보였다. 그는 단원들 사이에 남은 갈등과 앙금을 씻어내고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이후의 교향악단을 이끌어갈 책임을 안고 지난 9월 사장으로 취임했다.

"처음 출근하던 날 환영식을 아주 요란하게 치렀죠. 꽹과리치며 물러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반년 전의 일이라 무뎌진건지, 그만큼 상황이 잘 정리돼서 그런건지, 꽤 아팠을 기억을 박 사장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새로 뽑은 담당 국장은 이 사태를 보고 그만뒀어요. 임명장 받기도 전에 자기가 죽어나가는 꿈을 꾸었다면서요. 그만큼 분위기가 안좋았죠."

협동과 화합의 대명사인 오케스트라가 화합을 잃었으니 연주도 없었다.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KBS교향악단의 연주 일정표는 썰렁하다. 10월의 캘린더는 아예 텅 비어있다.

지난해 3월 예정돼 있던 제 666회 정기연주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고 11개월 만인 지난 2월 '667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

"재단으로 전환한 뒤 4차례 연주회를 했어요. 연주회 평가에 대해서는 연주자 스스로가 가장 잘 알죠. 공백도 길었고 주변의 우려도 많았지만 모두가 원했던 일이기도 하니 앞으로 더 좋은 연주를 들려드릴 겁니다."

KBS교향악단 사장으로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3가지 미션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가 단원 화합이었어요.

두번째는 지휘자를 선임하는 겁니다. 세번째는 관객 개발과 새로운 시스템 도입, 연주 확대 등 사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여러가지 일들이에요." 갈등의 원인이었던 만큼 지휘자 선임은 민감한 문제였다. 그가 찾은 해답은 '궁합'이다.

"지난해의 사태를 잘 마무리하려면 단원들과 궁합이 잘 맞는 지휘자를 선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누가 봐도 다른 말이 안나오도록 적임자들로 지휘자 추천위원회를 구성했어요. 물론 단원대표도 포함됐고 전원 합의를 봤어요. 지금은 10명의 후보군 중 3명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중에 선임지휘자를 선임할 계획이에요."

그는 이어 마지막 미션이자 재단법인으로서 KBS교향악단의 비전을 설명했다. 한 때 연주자로서의 꿈을 담아, 우리나라 1세대 공연기획자로서의 연륜을 바탕으로, 여러 문화기관을 거치며 쌓은 노하우를 동원해 구상한 KBS교향악단의 미래를 그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하나씩 이야기해 나갔다.

박 사장은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공연기획자'라는 것이 직업인 목록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연주를 잘 했으면 이 길로 안왔을지도 모르죠(웃음).

바이올린 덕분에 대학생 시절에 차도 몰고 다녔고, 대학 교향악단에서 악장도 했었어요. 그러나 모두다 연주자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시절에는 음악하는사람 중에 매니지먼트나 기획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그래서 맞고 틀리고가 없었어요. 정답지가 작성되지 않은 분야였죠. 내가 하는게 답이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

그는 80년대 초부터 공연기획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문화회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월급을 15만원 받는데 쓰는건 80만원이었죠. 배운다고 생각하고 1년반쯤 일하다 친구 셋이 모여 '아트피아'라는 회사를 설립했어요."

그렇게 우리나라 공연기획분야 1세대의 대열에 합류한 그는 여러가지 다양한 공연을 시도했다. "첫 해 수상음악회를 기획했어요. 배 위에서 음악을 듣고 와인파티도 즐기는거죠. 표는 매진이 됐는데 결국 공연은 못했어요. 공연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배 위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불이 나는 사고가 난 거예요. 그 뒤로 배에서 가무가 금지됐죠. 허허."

2년동안 아트피아를 운영한 그는 예술의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13년동안 근무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일했다. 직함은 '공연기획부장'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충무아트홀이었고 그는 40대에 '사장'이 됐다.

"지금 되돌아보면 예술의전당은 친정같고, 세종문화회관은 시집같아요. 충무아트홀은 처음 사장으로 일했던 곳이라 그런지 눈치보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던 곳이에요. 경인지역과도 인연이 깊다.

2006년부터 4년동안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일했고, KBS교향악단 사장으로 선임되기 바로 전까지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일했다.

그는 특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으로 일했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룬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당의 여러가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죠. 제가 처음 취임했을때 도내 24개 산하기관 중 기관평가 결과가 꼴등이었어요. 그게 1등으로 바뀌기까지 모든 직원들이 다같이 일하던 그 때가 정말 좋았어요."

그는 수도권의 여러 극장을 두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직장은 바뀌었지만 저는 지금까지 죽 한가지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공연기획이다.

공연기획 말고 또 한가지 그가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 있다면 '재단만들기'다. 월급 만원을 더 받고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재단화 작업을 도왔고, 충무아트홀에도 재단으로 전환하면서 합류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도 그가 취임한 2006년 재단법인이 됐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도 재단화하는 조건으로 옮겨갔다.

KBS교향악단도 재단화 이후 그가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재단화 과정을 여러차례 지켜본 그는 어느때보다도 단호한 목소리로 '재단의 허와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약속만 잘 이행되면 재단은 좋은 점이 무척 많아요. 재원도 풍부해지고 사업도 잘 할 수 있고.

세종문화재단도 과거 서울시에서 30억원씩 받다 재단으로 바꾸고 나서 연간 160억원씩 쓰고 있어요. 그러나 재단화를 핑계로 공무원들이 출연금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죠. 예를 들어, 오는 도립극장의 일년 예산이 150억원이라고 치면 연말에 꼭 10억~15억원이 남아요.

사업해서 번 돈도 10억원정도 되면 이 돈 25억원을 그대로 지자체에 반납해야 해요. 25억원이 있지만 돈없다며 공연도 못나가는 일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데 재단이 되면 이 돈을 반납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니 공연도 더 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수입도 생기겠죠. 수입이 늘면 단원들한테도 그만큼 더 돌아가고요.

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이렇게 되면 공무원들이 '연간 20억~30억씩이 더 있으니까 출연금을 조금 덜 주자'라고 결정해버려요.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되는거죠."

이런 경험때문인지, 그는 보조받는 예산을 활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한다고 한다. "말이 사장이지 우리같은 사람들은 사실 '고급거지'예요.

기업콘서트 등을 통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걸 두고 너무 상업적으로 변하는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KBS교향악단이 호텔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오케스트라라는 단체 자체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우리는 상업이랑은 관계가 멀어요." 그의 말처럼 KBS교향악단은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여는 클로버(K-lover)음악회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보다 조금 더 늘어난 연간 80회의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교향악단의 첫번째 목표이자 마지막 목표는 음악입니다.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모든 것의 바탕이죠. 앞으로 한중교류 음악회나 작곡가 펜데레츠키 초청 공연, 올해 정전6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바그너 200주년 기념 음악회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미뤄뒀던 연주에 대한 내실을 기하는 것만큼 그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변화다. 특히 그는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에서 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그동안 KBS홀을 거점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경기도 전역의 공연장을 방문하며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21~22일 열리는 668회 정기연주회도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먼저 열립니다."

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이미 활짝 펼쳐진 KBS교향악단의 미래에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깨가 무겁다. "음악가 출신이 음악하는 단체의 사장이 된 건 처음이에요. 무척 영광이면서도 그만큼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배운게 있으니 자신있습니다.

주변사람들한테 자주하는 말인데요. 사람은 말하는대로 되는 법이에요. 저는 늘 '네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살았고 그래서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KBS교향악단, 앞으로 잘 될 겁니다."

글·사진=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