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3조7천700억달러 규모의 2014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부자 증세와 노인 및 빈곤층 대상의 건강보험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를 맞바꿔 막대한 규모의 연방 정부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동시에 달램으로써 연방 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로 대변되는 '예산 난국'을 타개하려는 타협안이지만 보수 및 진보 그룹이 모두 반발하고 있어 의회 논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 무슨 내용 담았나 =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예산안은 세금 인상과 예산 축소를 병행해 앞으로 10년간 1조8천억달러의 재정 적자를 추가로 줄여 적자 규모를 총 4조3천억달러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 등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과 부유층의 세금 탈루를 막는 '상식적인 세제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또 줄이고 상속세를 올리는 한편 100만달러 이상을 벌면 최저한도세를 물도록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부유한 개인과 거대 기업이 대부분 미국민이 받지 못하는 공제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합치면 연방 정부는 향후 10년간 총 41조2천억달러의 세수입이 생긴다.
오바마 행정부는 1조8천억달러의 적자 감축안을 새로 내놓음으로써 시퀘스터로 내년 1조2천억달러가 자동으로 깎이는 것을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시퀘스터는 정치권이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 지출을 자동으로 줄이는 제도다.
백악관과 의회의 재정 적자 감축 협상 실패로 지난달 1일 시퀘스터가 발동돼 미국 정부는 9월 30일 종료되는 올해 회계연도에만 국방비 460억달러를 포함해 850억달러의 지출을 축소해야 한다.
정부 예산안대로 시행되면 오는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2014회계연도의 세수와 지출 간 격차, 다시 말해 재정 적자는 7천449억달러가 된다.
국내총생산(GDP)의 4.4%에 해당하는 것으로 2008년 이후 최저치이고 2013회계연도(9천730억달러)보다 2천억달러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세계 금융 위기로 세수는 줄어든 반면 각종 경기 부양책을 위한 지출이 늘면서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는 4년 내리 1조달러를 넘겼다.
미국 정부는 GDP 대비 적자 비율을 이런 식으로 점차 줄여 2016년 2.8%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예산안은 또 고속도로, 교량, 공항 등의 보수를 통해 취업률을 높이고자 400억달러를 즉시 투입하는 등 총 500억달러를 사회기반시설에 추가로 투자하는 방안도 포함한다.
아울러 10억달러를 들여 전국적으로 15곳의 제조혁신연구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담배 관련 세금 인상을 단행해 생기는 780억달러를 저소득 및 중간소득 계층 4세 자녀 무상 교육에 쓰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대신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및 장애인 의료보장), 은퇴자 연금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소비자 물가상승률(CPI)과 연계한 수당 지급 등의 방법을 활용해 10년간 4천억달러를 아낀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정 적자 감축과 관련해서는 공화당 요구를 더 많이 반영한 것"이라며 "공화당이 예산안을 논의하면서 정말 적자와 국가 부채 문제에 진지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압박했다.
◇ 정치권 반응은 =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예산안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구애 작전으로 이날 저녁 공화당 의원 12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식사 정치'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올해 예산 협상도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공화당은 이미 새해 벽두 재정 절벽(fiscal cliff) 협상에서 세수 확대를 위해 6천억달러 규모의 '부자 증세'를 단행한 만큼 어떤 형태의 세금 인상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존 베이너(오하이오) 하원의장은 이날 "대통령은 1월 세금 인상을 단행했다. 미국민의 세금은 다시 올릴 필요가 없다"며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는 충분하지는 않아도 칭찬할 만하다. 이를 세금 인상을 얻어내기 위한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 예산위원장도 "균형 예산은 언제 달성되는지, 균형이 잡힐 만한 예산안을 제시한 것인지 알고 싶다"고 평가절하했다.
미국 하원은 앞서 지난달 21일 라이언 위원장이 발의한 2014회계연도 예산안을 가결 처리했다.
세금 인상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은 대신 이른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 정책의 폐기와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 등 예산 감축만으로 10년간 4조6천억 달러의 적자를 줄이자는 게 핵심이다.
이어 미국 상원도 10년간 1조달러의 부자 증세 계획을 포함해 패티 머레이(민주ㆍ워싱턴) 예산위원장이 제출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상원 민주당의 속내도 복잡하다.
일부는 부유층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세금이 오른다고 반대하는가 하면 상당수는 민주당 지지 기반인 노령층과 약자, 소수민족 등 사회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 등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축소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정부 예산안과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안, 공화당이 다수 의석인 하원안의 내용이 제각각이어서 백악관과 의회 협상 과정에서 힘겨운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