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대학살고발등 반전 외쳐
비둘기에 '평화' 의미 부여도
원시부족미술·X-레이필름
다양한곳서 영감·소재 얻어


'피카소가 우리에게로 온다!'

아시아 최초 전시회로 관심을 끌고 있는 한국·스페인 도시간 교류전, '피카소의 절대미-고향으로부터의 방문전(展)'이 1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인천시내에는 지난 주말부터 피카소 전시회를 알리는 배너가 나붙기 시작했다. 인천시-스페인 말라가시 특별 교류전 형식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 시민들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피카소'란 이름 때문이다.

피카소에대해 세계적 미술가 정도로는 알고 있지만 정작 그의 예술세계가 어떤지,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한국과 관련한 그림을 남겼다는데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가 막막하다.

또한 피카소가 수많은 여성들과 사귀고 동거했다는 얘기도 얼핏 듣기는 한 것 같은데 막상 말하려니 자신이 없다.

■ 피카소와 한국

피카소는 반전·평화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하게 된 것도 피카소에서 비롯됐다고 할 정도다.

피카소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아주 유명한 대작을 남겼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작품이다.

1951년 10월, 미군의 북진 과정에서 빚어진 황해도 신천의 양민 대학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아기를 안은 여성, 임신부, 소녀, 어린이 등이 벌거벗은 채 한 데 몰려 거대한 악마의 모습을 한 무리들로부터 총격받기 직전에 있는 장면을 그렸다.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 또한 나치의 대학살을 고발한 작품이다.

피카소의 작품 중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게 있다. 1954년에 그린 '평화여 영원하라'(Love Live Peace)란 것인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강강술래다.

들판에서 나무 한 그루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빙 둘러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고 있다. 강아지도 두 발을 들고 같이 돈다. 그 가운데 비둘기가 난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깔 붓터치로 대상을 단순화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평화에 대한 갈망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전쟁 내내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르 피가로나 AFP 등의 종군기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을 통해 피카소는 한국전의 피해상황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전쟁 반대'를 외쳤던 것이다. → 3면에 계속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