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작품 중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게 있다. 1954년에 그린 '평화여 영원하라'(Love Live Peace)란 것인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강강술래다. 들판에서 나무 한 그루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빙 둘러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고 있다. 강아지도 두 발을 들고 같이 돈다. 그 가운데 비둘기가 난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깔 붓터치로 대상을 단순화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평화에 대한 갈망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전쟁 내내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르 피가로나 AFP 등의 종군기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을 통해 피카소는 한국전의 피해상황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전쟁 반대'를 외쳤던 것이다.
■ 피카소의 예술세계
1881년에 태어나 1973년 아흔 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피카소는 끊임없이 변신했다. 그는 모방의 귀재였는데, 그에게 모방은 곧 창의성의 시발점이었다. 그의 주변에 있기만 하면 모든 게 예술이 되었다.
아프리카 원시 부족 미술품도, 사랑하는 연인의 X-레이 촬영 필름도, 장난감 자동차도 그에게는 예술적 영감이자 작품의 재료가 됐다.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화가이자, 조각가이고, 도예가이며, 판화가였다. 또한 연극과 발레의 무대 디자이너이면서 의상 디자이너였다. 시인이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사진작가가 되기도 했다.
그는 연극, 무용, 음악, 문학(시), 마술, 주술, 신화, 종교의식 등을 두루 종합해 작품에 소화했다. 그는 조각을 위해 용접기술을 따로 배우기도 했다. 피카소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피카소는 1973년 숨을 거두기 직전에 파리에서 156점의 최근작 판화전을 개최했다.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분야가 바로 판화라는 얘기다. 이번 판화전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피카소 한국전시회는 그 판화의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피카소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피카소와 여인들
피카소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인'들이다. 피카소를 연구한 여러 작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페르낭드 올리비에, 에바, 가비 레스피나스, 올가 호홀로바, 마리 테레즈, 도라 마르, 프랑수아즈 질로, 재클린 로크 등 많은 여성들이 그와 함께했다.
정식 결혼은 두 번 했지만, 이들 8명과 모두 동거했다. 피카소에게는 한시도 여성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모델도 있었고, 러시아 귀족 무용수도 있었다.
여류 사진작가, 미술학도도 있었다. 이들 이외에도 육체적 관계로 잠깐 사귄 경우가 몇 명이나 더 있어, 피카소와 얽힌 여성들은 10명이 넘는다고 할 수 있다.
'피카소의 절대미-고향으로부터의 방문전(展)'은 인천에서 7월 6일부터 9월 22일까지 먼저 선보인 뒤, 10월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어 대구로 순회한다.
경인일보는 앞으로 3~4개월동안 매주 피카소와 그의 작품세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코너를 마련한다. '피카소, 아는 만큼 보인다'는 타이틀 아래 마련할 이 자리는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전문가가 길 안내를 맡는다.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