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말라가 시에서 운영하는 '피카소 재단-생가 박물관(Fundacion Picasso_Museo Casa Natal)'의 소장품으로 구성된다.
말라가는 스페인 남쪽 끝 안달루시아 지방에 속해 있으며,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보고 있는, 인구 55만명의 작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항구도시이다. 축구팬들에게는 현재 프리메라 리가에서 6위를 차지하며 선전하고 있는 말라가CF의 연고지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말라가는 711년부터 1487년까지 아랍계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 흔적을 보여주는 이슬람 유적 알카사바 성채가 고대 로마 유적인 극장, 가톨릭 대성당과 조화롭게 인접해 있다.
매우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모습에서 항구 도시 특유의 넉넉한 개방성과 관용이 드러난다. 모로코식 민트티와 스페인 정통 추러스가 멋지게 어우러지는 곳, 태양의 해변 '코스타 델 솔'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휴양지가 바로 말라가이다.
1861년에 건축된 피카소 생가 건물은 150년이 넘은 지금까지 예쁘고 견고한 녹색 창을 유지한 채 보존되고 있으며, 메르세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도 여전히 광장의 중앙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등 피카소 출생 당시의 도시 경관은 여태껏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 피카소의 생가 건물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말라가 시 산하 기관인 '피카소 재단'에서 소장품 관리와 박물관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재단은 20세기 미술을 지배한 피카소라는 인물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강화하고, 피카소 생가를 통해 도시의 문화, 관광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하고 있다.
7월에 인천에서 개최되는 한국 전시 또한 피카소와 말라가의 관계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전형적인 안달루시아인의 외형을 가진 전갈자리의 피카소는 이곳 말라가를 매우 좋아했다. 10살 때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차가운 안개가 끼는 스페인 국토 반대편 갈리시아 지방의 코루냐로 이사한 후, '말라가도 없고, 친구들도 없고, 투우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비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이라고 한탄했었다고 한다.
말라가의 토양은 어린 피카소를 자극하였고, 피카소로 하여금 어릴 적부터 모든 시각적인 것에 열정적 관심과 비상한 의지를 보이게 했다. 향후 피카소의 절대적이고 숭고한 예술세계의 근간이 바로 말라가에서 시작된 것은 매우 자명해 보인다.
피카소는 1937년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피카소 양대 걸작으로 꼽히는 '게르니카'를 그렸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는 약 2개월에 걸쳐 비교적 단숨에 향후 자신의 최대 역작으로 평가받게 될 작품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1939년 프랑코파의 승리로 내전이 종식되고 결국 스페인이 프랑코의 치하에 있게 되자, 피카소는 프랑스로 망명하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프랑스에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여름이면 고향인 말라가를 찾아 아름다운 해변에서 수영을 즐겼다고 한다.
프랑코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신랄히 비판한 예술가에게 앙심을 품기보다, 동시대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망명자의 불법입국을 눈감아 주었다고 전해진다.
오는 7월 6일부터 3개월 동안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계기로 피카소가 멀리 자신의 고향 말라가에서 우리를 방문한다.
그가 들려 줄 말라가 이야기, 자신의 예술 이야기, 인생 이야기가 자못 궁금해진다. 분명히 흥미진진할 것이다.
/이영리 전시 담당 큐레이터·미술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