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의 사랑 두번의 결혼
그녀를 보면 그의 작품 보여
사랑할땐 부드러운 장밋빛 화풍
불화땐 작품에 발작증상 나타나


피카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피카소의 여자 관계다. 특히 말년에 나이 어린 여자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에 남자들은 부러움을 표현하고, 여자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하긴 피카소만큼 여성 편력으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끈 예술가도 드물다. 피카소는 7명의 여인과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두 번 결혼하였고, 아이는 4명을 낳았다.

이들 여인은 모두 피카소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은 여인들까지 더하면 피카소와 관계한 여인은 10여명이나 된다.

피카소는 파리에서 매우 가난하게 지내던 시기에 스무살 동갑내기였던 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 Olivier)를 만나 8년을 함께 했다.

페르낭드와 헤어진 후에는 폴란드 화가 루이스 마르쿠시의 약혼녀였던 에바 구엘(Eva Gouel)을 만나 깊이 사랑하였으나, 그녀는 1차 대전 중이던 1915년에 결핵에 걸려 세상을 등지고 만다.

에바가 죽은 뒤 2년 후, 피카소는 장 콕토의 부탁으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공연의 무대 장식과 의상을 제작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러시아 장교의 딸이었던 발레리나 올가 코클로바(Olga Khokhlova)를 만난다.

둘은 1918년에 결혼하여 아들 파올로를 낳았고, 1935년에 헤어지게 되지만 올가의 반대로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

피카소는 올가와 결혼생활 중이던 1927년에 마리테레즈 발터(Maire-Therese Walter)를 만났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살, 피카소는 46살이었고 둘은 몇 년간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1935년 올가가 피카소를 떠나던 해에 둘 사이에 딸 마야(Maya)가 태어났다.

피카소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사진가이자 지식인이었으며, '게르니카'에 얼굴이 등장하는 도라 마르(Dora Maar)를 만나게 된다. 도라는 스페인어에 유창했고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 피카소와 깊게 통할 수 있었다.

이후 피카소는 40세 연하의 화가 프랑수아즈 질로(Francoise Gilot)를 만나 10년을 같이 살았으며, 슬하에 아들 클로드(Claude)와 딸 팔로마(Paloma)를 두었다.

1953년 프랑수아즈가 아이들을 데리고 피카소를 떠난 이듬해, 피카소는 발로리스라는 남프랑스의 한 도자기 제작소에서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피카소에게 매우 헌신적이었으며, 1961년 34살의 나이에 80살의 피카소와 결혼하고, 피카소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 했다.

피카소는 작품에 자신의 개인 생활을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께 하는 동반자를 모델로 많은 초상 작품을 제작한 것은 물론, 연인이 바뀌면서 작품의 내용과 형식도 바뀌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페르낭드와 만나면서 우울한 청색시대가 끝나고 한결 부드러운 화풍의 장밋빛 시대로 들어선다.

에바를 만나면서 파피에 콜레(papier colle, 종이 붙이기) 기법을 처음 시도하는 한편, 한창 몰두해 있던 입체주의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또한, 피카소는 올가와 살면서 고전적이고 구상적인 양식으로 되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올가와의 불화가 심해질 때에는 작품이 공격적이다 싶을 정도로 격정적으로 변했다.

이 시기에는 초현실주의가 태동하고 있었으며, 앙드레 브르통은 '앞으로 미는 발작증상적 성격을 지닐 것으로, 그렇지 않은 미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언급했는데, 바로 피카소의 당시 작품들이 '발작증상적'이었다.

그리고, 피카소는 올가와는 성격이 확연히 다른 마리테레즈로부터 평안함을 느꼈고, 그녀가 발산하는 아름답고 엄숙한 선과 충만한 형태를 회화와 조각작품으로 쉬지 않고 표현하였으며, 판화의 매력에 빠져들고, 시를 써 나갔다.

양차 대전 사이에 만난 도라 마르는 독재에 저항하는 인물로 늘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반면, 프랑수아즈 질로를 만날 당시의 피카소는 석판화의 세계에 푹 빠져, 새로운 기법을 탐구해 가며 그녀의 초상을 다수 제작하였다.

그리고, 자클린을 만났을 때, 피카소는 이미 칠순이 넘었으나 도자기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에 심취하여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피카소의 여인들은 그의 예술세계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하였으며, 피카소의 식을 줄 모르는 창작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한 뮤즈나 다름없었다.

이번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 전에서는 피카소와 말년을 함께 한 프랑수아즈와 자클린의 초상 작품들이 시리즈로 소개된다.

프랑수아즈는 정면을 응시한다.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눈빛은 관람자의 접근을 경계하는 듯하다. 하지만 매우 풍부한 울림이 전해진다.

프랑수아즈의 얼굴은 엄격하게 좌우 대칭을 유지하며 정형화되어 마치 기독교 성상화와 같은 엄숙함마저 풍긴다.

반면 자클린은 늘 옆모습이며, 긴 목과 높고 뾰족한 코가 매우 우아하다. 이러한 90도 측면상은 중세 귀족들의 초상화 구도를 연상시키며 품위, 자긍심, 결단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의 성격을 강조해 준다.

▲ 이영리 전시 담당 큐레이터·미술사 전공
프랑수아즈가 이집트 벽화 같아 눈빛을 읽기가 어렵다면, 자클린은 뾰로통해 있거나 혹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프랑수아즈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기 어려운 반면, 자클린의 블라우스는 꽃무늬로, 때로는 우아한 곡선무늬로, 때로는 리드미컬한 프린트 무늬로 바뀐다.

피카소는 자기 옆의 연인과 사이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림도 다르게 그렸다. 피카소의 뮤즈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변화 양상은 전시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영리 전시 담당 큐레이터·미술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