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오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관람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계속되는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전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예가, 판화가, 삽화가, 시인으로서의 피카소를 부각시키며 피카소의 무한한 호기심,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력과 표현력을 여실히 드러낸다.

피카소는 삽화 부문에 있어서도 '역시! 피카소'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피카소는 다른 어떤 화가보다 시인과 문인들이 각별히 좋아하던 화가였다.

피카소는 파리에 정착한 날부터 생애 마지막 날까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막스 자콥, 기욤 아폴리네르, 장 콕토,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피에르 르베르디 등과 끊임없이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당시의 편집자들이나 문학가들이 천재의 그림이 들어간 책을 출판하고 싶어 피카소를 조르고는 했단다.

피카소는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는 등의 이유로 매우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삽화 작업에 참여했는데, 이는 피카소가 대단한 장서가로 책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대의 지식인들과 맺은 긴밀한 교우 관계와 친분 때문이기도 했다.

피카소는 24세였던 1905년 안드레 살몽의 시집을 시작으로 1974년 피카소 사후에 출간된 피에르 앙드레 브누아의 시 '그래서'까지 무려 156편의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피카소는 당대 문학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출판인들의 권유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나 뷔퐁의 '자연사',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 고전문학을 위한 삽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변신이야기'는 이번 전시의 중요 섹션을 차지하고 있으며, 톨스토이의 초상도 전시에서 직접 살펴볼 수 있다.

그간 삽화가로서의 피카소는 미술사가와 비평가에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나마 연구가 있었더라도 다른 분야와의 비교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역사적, 예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삽화의 중요성이 낮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피카소의 널리 알려진 작품들과 나란히 발전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피카소는 삽화를 통해 자신의 예술이 다른 장르와 결합되어도 그 독창성과 독립성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전의 9~14섹션은 피카소의 삽화 작품에 할애했다.

같은 삽화라고는 하지만 섹션별로 표현 양식이나 주제가 매우 상이해 관람의 흥미를 더하고 있음은 물론, 그간 묻혀 있던 삽화가 피카소의 면모를 강조하여 새로운 미술사 연구 주제를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제6섹션 '남성의 얼굴'에 매우 흥미로운 두 점의 초상 작품이 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초상화인데, 두 초상은 피카소의 작업 단계를 보여주는 듯 매우 대조적이다.

한 작품(왼쪽)은 단순한 선 몇 개로 콧수염을 달고 생각에 잠긴 소설가를 캐리커처처럼 코믹하게 표현한 반면, 다른 한 작품(오른쪽)은 어지러운 선들로 살이 쪄 투실투실한 얼굴과 목주름, 머리숱을 표현하였다.

이전 작품의 희극성은 사라지고 작가의 복잡한 심리와 심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들은 1952년 피카소가 매우 절친한 인쇄업자였던 페르낭 물로의 부탁을 받아 제작한 것들이다.


물로는 '프랑스 20세기 소설 시리즈'에 들어갈 '고리오 영감'의 디럭스판을 출간하고자 피카소에게 삽화를 부탁하였다.

피카소는 지체없이 작업에 착수해 1952년 11월 25일에서 26일까지 단 이틀 동안 발자크의 초상 12점을 완성하였고, 그 중 두 점이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것이다.

피카소는 바로 이 발자크 초상을 그리기 위하여 발자크의 사진을 참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신 매우 혁신적이고 파워풀하여 전형적인 기념동상의 틀을 깨버린 오귀스트 로댕의 발자크 동상을 참조하였다.

피카소는 로댕의 작품들을 매우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카소 자신이 조각 작품을 제작할 때에도 19세기 후반 사실주의와 상징주의의 경향을 적절히 혼합한 로댕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로댕이 묘사한 발자크를 재해석함으로써 피카소는 프랑스의 대문호와 위대한 조각가 둘에게 동시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피카소는 발자크의 초상이 실린 '고리오 영감'보다 약 20년 전에 이미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 삽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미지의 걸작'에 수록된 피카소의 삽화 작품들은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전 제10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영리 전시 담당 큐레이터·미술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