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노환으로 별세한 헬렌 토머스. 생일이 같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테랑 백악관 기자 헬렌 토머스가 미국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함께 생일을 축하한 2009년 8월 4일 자 사진. /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로 유명한 여성 언론인 헬렌 토머스가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Gridiron Club)은 이날 "토머스가 다음달 93회 생일을 앞두고 오늘 노환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토머스는 그리다이언 클럽의 첫번째 여성 회원으로 가입해 회장을 맡았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헬렌 토머스는 여성 언론인의 벽을 허문 진정한 개척자"라면서 "아내 미셸과 나는 토머스의 별세 소식에 슬퍼하고 있다"고 애도했다.

레바논 이민 2세인 토머스는 무려 60년 이상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전ㆍ현직 대통령을 취재한 베테랑 기자다.

그는 특히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기자들 대다수가 남성이었던 1960년대 초부터 UPI통신 기자로 백악관 브리핑룸의 맨 앞줄에 앉아 대통령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으면서 이름을 떨쳤다. 과거 한 백악관 대변인은 그의 질문을 '고문'(torture)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때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은 매번 "안녕하세요, 대통령님"이라는 토머스의 인사말로 시작해 "감사합니다. 대통령님"이라는 토머스의 인사말로 마무리되는 게 관례였다.

일선 기자 시절 남긴 "언론은 정례적으로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는 말은 유명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토머스에 대해 "두려움 없는 진실 구현, 치열한 정확성 추구, 정부에 대한 끊임없는 책임 부여 등 미국의 저널리즘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의 데이비드 포큰플릭 기자는 "토머스는 여성이 활동하기 어려웠던 워싱턴DC 기자단의 벽을 허물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는 백악관기자단의 첫 여성 간사를 맡았고, 과거에는 여성의 가입조차 금지됐던 내셔널프레스클럽의 첫번째 간부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토머스는 중동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주장했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6월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관련행사에서 만난 랍비에게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자신들의 집인)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가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당시 재직하던 '허스트 코포레이션'의 기자직을 사퇴했었다.

그러나 2011년 버지니아주(州) 주간 신문인 '폴스처치 뉴스-프레스'에서 다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 8월 4일 켄터키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자란 토머스는 1943년 워싱턴DC의 '워싱턴 데일리 뉴스'에서 견습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UPI통신으로 옮긴 뒤 백악관을 출입했다.

1971년 라이벌 언론이었던 AP통신의 백악관 출입기자 더글러스 코넬과 결혼했으나 11년 뒤 남편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