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 태우고 달리는 기차
언제나 그랬듯, 맞서는 인간
빙하기 인류 최후의 생존지
억압받던 꼬리칸의 사람들
분노로 무장 앞칸으로 질주
2013년/한국/125분/SF, 액션, 드라마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개봉일: 2013년 8월 1일. 15세 관람가.
영화에서 늘 그렇듯이, 상황이 악화될수록 평등은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불평등이 한계에 달했을때, 밑바닥에서 참고 굶주렸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한 전쟁에 나선다.
너무도 뻔한 공식이지만, 이런 상황은 실제 역사에서도 쳇바퀴 돌듯이 반복돼 왔다. 영화가 이같은 설정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역사'로부터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역시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진 이같은 불평등을 스토리 전개의 출발로 삼았다.
인류가 대비할 틈도 없이 다시 닥친 빙하기에 겨우 살아남은 인류를 태우고 달리는 기차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묵시록적인 SF를 연상하기 딱 좋은 설정이지만,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이 장르의 통념을 벗어나 달려 나간다.
영화는 SF 장르의 기술적 새로움과 VFX의 비주얼 스펙터클에 기대기 보다는, 좁고 긴 기차 안을 벗어날 수 없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팽팽한 긴장과 충돌을 기본 동력으로 삼는다.
영화에서 기차는 인류를 전멸의 위기로 몰아간 빙하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생존지역으로 그려진다. 가까스로 올라탄 사람들을 태우고 질주하는 기차.
하지만 꼬리칸 사람들이 헐벗은 채 창도 없는 비좁은 화물칸에서 지옥같은 상황에 빠져있는데 반해, 비싼 티켓으로 탑승한 앞쪽칸 사람들은 술과 마약이 난무하는 사치와 쾌락속에 빠져 있다.
이들 사이에 배치된 군인들은 꼬리칸 사람들이 앞쪽 칸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고 꼬리칸 사람들을 억압한다.
마침내 분노한 꼬리칸 사람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분노로 무장한 사람들은 앞쪽 칸을 향해 한발 한발 돌진해 들어간다.
압도적 열세를 딛고 일어선 꼬리칸의 전사들은 칸을 돌파해 낼 때마다 앞쪽칸의 군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생생한 액션을 스크린에 펼쳐보인다.
이런 가운데 무섭게 질주하는 기차는 기차 안에서 질주하는 주인공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좁은 기차 안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발버둥치는지를 현미경 들여다 보듯 그려낸다.
'설국열차'는 한국과 미국, 영국 등 국적 불문의 정상급 연기파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한국·미국·영국·체코·헝가리 등 다국적 스태프를 구성해 체코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어찌보면 국적불명의 다국적 영화 같지만, 봉준호 감독은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등 강렬한 연기파 배우들을 이끌고 '새로운 한국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설국열차'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선판매되는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고, 한국영화라는 자존심에 걸맞게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먼저 개봉됐다.
/박상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