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군이 14일(현지시간) 장갑차와 불도저를 앞세우고 무함마르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강제해산 작전에 나서 최소 32명이 숨진 것으로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무르시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의 강제진압으로 100명 이상 숨지고 2천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보안군 병력들이 카이로에서 최루가스를 쏘아대며 시위대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집트 과도정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이후에 벌어진 최악의 유혈사태 속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교민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수도 카이로에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까지 내리면서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은 물론 여행업계와 한국 기업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15일 교민 사회와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이집트 군부가 전날 오전 카이로 나스르시티 라바 광장과 기자지역 카이로대 앞 나흐다 광장의 농성장을 무력 진압한 직후 카이로 시내 치안이 크게 악화했다.

나흐다 광장에서 철수한 무르시 지지자 수십명은 인근 무스타파 마흐무드 광장으로 이동하는 중 도로를 점거하고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무르시 지지 세력은 또 카이로를 포함해 전국의 공공건물과 콥틱 교회를 공격하고 상점을 약탈하는가 하면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파괴하거나 보행자를 이유 없이 공격하는 등 과격한 행위를 보였다.

교민 밀집 지역인 카이로 남부 마아디 지역의 올림픽스타디움 인근 아랍시장에서도 무르시 지지파 수십명이 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도로를 막아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다.

이들은 또 군부의 시위대 무력 진압에 항의하는 기습 시위도 벌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마아디 일대의 대형 쇼핑몰과 거리 상가들은 약탈과 시위대의 폭동 등을 우려해 문을 닫았다.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일부 식당도 이날 사태가 악화할 조짐을 보이지 일찌감치 영업을 중단했다.

마아디에서 식당업을 하는 한 50대 교민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비상사태 선포로 불안해하고 통행금지령으로 퇴근 교통편을 구하기 어려워 일찍 퇴근시켰다"며 "어쩔 수 없이 오후 5시께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 숨을 쉬었다.

이집트에서는 지난 7월3일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축출된 시점을 전후로 외국인이 대거 빠져나가 한국인을 제외하고 손님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이 교민은 전했다.

한국 여행업계도 이집트 사태를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카이로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이집트 정국 불안으로 한국 관광객들이 좀처럼 이곳을 찾지 않고 있는데 조만간 이집트를 여행할 예정인 한국 손님마저 사태 악화로 예약을 취소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이 사업가는 카이로 도심에 사무실이 있으나 이날 군경의 시위대 주변 통제와 교통 체증으로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도 현지 직원들의 불안감에 조기 퇴근을 시행하는 등 업무에 지장을 받았다.

이집트에서 근무하는 한 대기업 지사장은 "현지 여직원은 낮 12시에, 남자 직원은 오후 3시에 각각 퇴근을 시켰다"며 "일부 현지 직원은 불안한 끝에 아예 출근조차 안 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다음날은 평소처럼 정상 근무를 하겠지만, 사태 추이를 보며 퇴근 시간을 바꿀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지금까지 교민의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며 "다만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는 만큼 당분간 외출은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현대자동차는 이집트 정국 혼란이 지속하자 지난주 아프리카 지역 본부 이전을 검토한 끝에 지역본부를 카이로에서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이전하기로 했다.

기아차도 카이로에 근무하는 한국인 상주 직원을 아프리카·중동 본부가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이전키로 하고 현재 카이로 지부 사무실의 폐쇄를 위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이집트 정국 혼란 속에 한국의 대기업이 카이로 지역 사무실을 폐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카이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