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오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 경인일보 창간 68주년 기념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메운채 관람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성냥공장의 불은 누가 질렀을까'.

경인일보 창간 68주년 기념공연으로 펼쳐진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는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산업화에 투신해 온 몸을 불사르던 성냥공장 여공들이 '그때 그 시절' 꿨던 꿈과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극단 십년후(대표·송용일)가 이 작품을 인천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성냥공장 아가씨'는 지난해 인천항구연극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연극 '화(火)'에 노래와 춤을 입혀 때론 경쾌하고, 때론 애틋하게 그때 그 시절의 짙은 향수를 불러낸다.

군대에서 불리던 저속한 유행가 속의 '성냥공장 아가씨'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유학을 꿈꾸며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숙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두를 감싸는 언니 인화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두 자매를 비롯한 여공들이 성냥공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일하는 모습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표정으로 마치 기계의 부속품이 돌아가는 모양의 춤으로 산업화 시대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환경, 저임금에 시달리던 성냥공장의 여공들은 치마 밑에 성냥 한 통씩을 훔쳐서 퇴근한다.

월급을 못 받은 지도 벌써 석 달째. 함께 일하고 있는 인숙도, 꽃님이도, 말순이도, 미자도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악덕 사장은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돈을 갖다주면서도 여공들의 월급은 뒷전이다. 그러면서도 여공들이 성냥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을 탄압한다.

공천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사장의 횡포는 극에 달한다. 그 순간, 성냥공장에 불이 났다.

여공들이 부르짖는 "불이야! 불이야!"의 외침소리는 절규라기보다 분노에 가깝다. 악덕 사장의 횡포에 억눌려 있던 분노를 한순간에 터뜨리는 노래와 몸짓은 '파업'까지 연상케 한다.

중반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오며 춤과 노래로 표현되던 성냥공장 여공들의 희로애락은 공장에 불이 붙으며 절정에 다다른다.

이후 이야기는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려는 인화의 헌신적인 모습에 집중하며 연극에 가깝게 흐른다. 춤과 노래가 줄면서 다소 호흡이 끊긴 듯한 느낌이 드는 점은 아쉽지만, 인화의 어머니와 같은 사랑은 이 같은 단점을 금세 잊게 하며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과연 성냥공장의 불은 누가 질렀을까. 현실에 대한 인숙의 분노일 수도, 동생과 여공들을 끝내 책임지지 못한 인화의 죄책감일 수도, 공천에서 탈락하고 회사까지 부도난 사장의 절망일 수도 있다.

해답은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사실 극 중에선 성냥공장에 불을 누가 질렀는지 중요치 않다. 어찌됐든 간에 모두를 억압하던 성냥공장이 타버린 뒤 극중인물들은 자신이 꿈꾸던 희망에 한 걸음 다가선다.

우리의 어머니, 누이, 언니, 동생들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며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을 헤쳐나갔을 것이다.

아마도 당신의 어머니 혹은 누이, 언니는 관객석에 앉아 애틋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인화와 인숙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미소와 함께 진 눈가의 주름은 그때 그 시절의 희로애락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