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9일 서울 용산구 방글라데시 대사관앞에서 방글라데시 난민들이 치타공 산악지대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벵갈리 정착민들이 일으킨 집단 인권폭력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재한줌머인연대 제공
세계 각지 전쟁·재난… 자유 찾아서 '한국행'
정부 엄격한 판정기준 대부분 임시체류 신세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살며 인권유린에 신음
"한국전쟁등 고난의 시절 잊었나" 비판 자초


난민법이 지난 7월 1일 본격 시행, 국제법에 입각한 난민법 체계를 구비하게 됨에 따라 난민인권정책 변화 등 인권 보호를 위한 지평이 확대돼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인권선진국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현행 난민법상 난민인정 심사간이절차 및 공·항만에서의 난민인정 신청 절차 등이 난민의 인도적 지위에 관한 구체적인 자격 요건과 인정 절차에 대한 내용마저 규정하지 않는 등 난민 처우와 지원을 위한 제도 부실로 난민인권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또 난민들의 경제·사회적 권리를 실현키 위한 정책 방향과 집행방식 등도 제대로 수립되지않아 대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경인일보는 창간 68주년 대기획 '코리아 고스트(Korea Ghost), 난민'을 통해 현행 한국 난민 실태와 난민법의 허구성을 집중 조명한 뒤 대한민국에 입국한 난민들의 지위와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의 원스톱 난민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대안들을 모색해 본다.

이를 위해 경인일보는 세 차례에 걸쳐 한국 난민 문제를 대해부한다.

우선 제1부 '경기·인천 등 수도권은 난민천국'에선 7회에 걸쳐 한국에 입국한 난민들의 생활실태와 난민법의 문제점 등을 집중 보도한다.

2부에선 '일본 난민정책의 허와 실'을 통해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난민수용정책을 발표한 일본의 재정착난민제도 운영 실태에 관한 해외취재에 나선다.

경인일보는 일본의 난민 재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의 한계와 대안 등을 3회에 걸쳐 국내에 소개한다.

제3부에선 '메솟 난민촌을 가다'에서 경인일보는 종족 갈등으로 2만여명의 난민들이 무더기로 발생,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선에 걸쳐 형성된 난민캠프 현장 취재를 통해 얻어진 귀중한 이야기들을 4차례에 걸쳐 풀어놓는다. ┃편집자 주

한반도에 '유령' 난민(難民·Refugee)이 출몰하고 있다.

한국사회 재정착 혹은 편입에 실패해 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난민들이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는 탓이다.

최근 시리아 등 아프리카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 전쟁 등으로 발생한 난민들은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들은 난민판정을 받지 못해 또다른 도피처로 떠날 준비를 하거나 한국법원에서 난민인정을 받기 위한 소송을 벌이면서 불법 혹은 임시 체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난민판정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 소요되면서 먹먹하기만 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며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전락한 상태다.

▲ 13개 소수 민족들로 이뤄진 방글라데시 치타공 줌머족의 자주독립을 외치다 한국으로 망명온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소험(4세)이 김포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열수기자
이 때문에 모국으로부터 버림받은 난민들은 피난처로 선택한 한국정부로부터도 또다시 외면당하면서 국내에 실존은 하지만 그 실체는 인정받지 못하는 유령같은 존재, 즉 '코리아 고스트, 난민'으로 간주되고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국내난민 현황 등에 따르면 모국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돼 한국에 온 난민신청자들은 지난 5월말 현재 5천500여명으로 집계된 만큼 증가추세를 고려할 때 9월 2일 현재 6천여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중 난민인정을 받은 이들은 33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소수다.

법무부의 난민인정 수치를 놓고 볼때 난민신청자중 거의 대부분인 95%이상이 한국정부로부터 난민인정을 받지 못해 유령같이 있는듯 없는듯 숨어지내고 있다.

게다가 난민의 자녀로 태어나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난민2세들은 국적조차 없는 진짜 유령으로 살아가야할 비운의 운명에 처할 것이 불보듯 뻔해 막막하기만 한 실정이다.

게다가 설혹 난민으로 인정을 받더라도 한국사회에 재정착하는데 실패해 이웃으로부터 격리돼 살아가면서 '부평초'같은 삶을 연명하고 있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전언이다.

'코리아 고스트' 난민의 급증은 결국 한국사회의 난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빚어진 인권유린의 결과인 셈이다.

유령같은 난민이 늘어나는 또다른 이유는 대한민국 전체에 퍼져있는 '망각의 늪'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게 그 요지로, 한국의 근대사는 난민 혹은 디아스포라의 역사였다고 인권단체들은 꼬집는다. 한국정부의 난민에 대한 비인권적 정책은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처사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일찍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미국과 프랑스, 브라질 등지로 탈출, 난민이 되었다.

이어 군사독재를 지나 민주주의 투쟁에 나선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피해 또다시 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탈출한 탈북자들이 속출하자 난민으로 인정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까지 한 당사자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대한민국이 이율배반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난민에게 정작 기존 난민의 지위 규정과 보호 등을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해 폐쇄적으로 운용,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그 반대의 현상이 한국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난민을 양산하는 나라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그 처지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한국이 지난 1992년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고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뒤 수많은 난민 신청을 모두 거부하다가 2001년에 처음으로 난민을 인정하면서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또 한국은 지난 7월부터 '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부족하지만 난민인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난민을 둘러싼 한국시민들의 우려가 외국인 혐오증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생활하는 줌머족들에 대한 벵갈리 정착민의 반복적인 인권탄압에도 군당국은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재한줌머인연대 제공
최근 인천 영종도내에 지은 난민지원센터 설립·운영을 놓고 난민지원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있는 주민들의 반발이 도를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법무부의 안일하고도 무능한 대응이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혈세를 들여 세운 난민지원시설이 문을 열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면 한국의 난민인권정책이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착한 난민들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태를 감안해 해외 난민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인식을 돕고, 난민들의 지위와 처우를 보장해 주기 위한 다양한 난민지원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관련, 차크마 나니 로넬 재한줌머인연대 자문위원장은 "우리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유령처럼 살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 2004년 난민인정을 받은 뒤 2011년 한국국적을 취득하기도 한 로넬 위원장은 "한국사회에서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게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한국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참담함을 느낀다"며 "일각에서 '한국말 잘하네', '한국사람 다됐네'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줌머인들은 여전히 한국사회내에서 외롭게 떠도는 섬이거나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유령같은 존재라고 깨달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전한다.

기획취재팀=김환기 서부권취재본부장(김포), 이재규(안산)·전상천(부천)·임열수(사진)차장, 김영래(시흥)·홍현기(인천)기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