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해를 바라보며 새해 아침을 맞는다. 아쉬움을 안고 석양에 졌다가 다시 떠오른 태양처럼, 우리사회에는 아직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그러나 고정된 틀과 관념은 이런 꿈을 절망의 늪으로 추락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고정관념에서 깨어나 도전하는 정신이야말로 21세기가 요구하는 가치관이 될 것이다. 본보는 새해를 맞아 우리사회가 그동안 은연중에 흘려버리고 묵인해왔던 구태와 엇나간 현실인식들을 되짚어보고 초심으로 되돌아가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환상에서 깨어나자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주인공들이 절대자인 '고도'를 기다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고도가 온다는 확신도 없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도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최근 우리의 경제현실을 연상시킨다.
국가부도라는 끔찍한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IMF에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한지 만 3년이 지났지만 현재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IMF때의 1차 경제위기와 비견해 제2의 경제위기를 앞두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기업부실도, 집단이기주의도, 도덕적 해이도 만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IMF직후 우리사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국타개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 과소비억제와 금모으기에 나서는 저력을 발휘했다. 정부도 경제위기를 종식시키자며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에 총력을 다했다. 그 결과 불과 1년 6개월여만에 여기저기서 IMF졸업론이 대두됐고 각종 경제지표들도 회복세를 구가했다.
그러나 그 틈새를 비집고 되살아난 과소비의 망령은 골프장, 유흥가의 호황을 IMF이전으로 되돌렸고 대다수 서민가계의 소비위축과는 관계없이 일부계층을 중심으로 호화사치풍조가 고개를 들게됐다. 명백한 '서민'처지임에도 아직 '잘 나갈때'의 소비·생활패턴을 고수, 외식비로 10만~20만원을 우습게 쓰는가하면 카드 할부로라도 토끼털 외투 한벌쯤은 씩씩하게 구입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구조조정과 개혁의 고삐를 슬그머니 놓아 버렸다.국가나 기업이 위기극복에 실패하는 과정을 설명할때 흔히 쓰이는 'CRIC'의 공식이 거짓말처럼 정확히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위기도래(Crisis)-상황개선(Improvement)-자만감(Complacency)을 거쳐 다시 위기를 맞는다는 각본이다. 지금 우리경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못하느냐의 배부른 상황이 아니다. 회생불능의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망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기로에 놓였을 뿐이다.
아무런 노력없이 고도만 기다리기에는 눈앞의 장애물이 너무도 많다. 환상에서 깨어나자. 초심으로 돌아가자.
/裵相祿기자·bsr@kyeongin.com
환상을 깨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입력 2001-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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