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한국/122분/드라마
감독 : 이준익
출연 : 설경구, 엄지원, 이레
개봉일 : 10월2일. 12세 관람가
이 영화, 촌스럽다. 배우의 연기도 극의 전개도 모두 예상 가능하다. 한마디로 뻔한 작품이다.
그런데 보면서 눈가를 훔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1년 상업영화를 다시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준익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복귀작 '소원' 이야기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훈(설경구)은 야구 중계와 아내 미희(엄지원)의 잔소리, 똑 부러지는 딸 소원의 능청을 낙으로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아이는 등교하고 아내는 가게를 보고 자신은 출근한, 특별할 것 없던 어느 비 오던 아침, 동훈은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그의 평범했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원'은 아동 성폭행을 소재로 했다. 영화를 보면서 조두순 사건이 떠오를 수도 있고, 김수철 사건이 생각날 수도 있다.
폭행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지만 이미 비극의 주인공이 된 배우들의 얼굴과 상처를 들쑤시는 폭행에 대한 상세한 대화 내용은 관객들을 계속해서 불편함의 모서리로 몰아간다.
그 힘겨운 시간을 살짝 넘기면,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 신파로 흐른다. 관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범인에 대한 단죄 열망, 노소를 가리지 않는 친구들 간의 우정, 모정(母情)과 부정(父情),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심장.
이준익 감독은 뜻밖에 사고를 접한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보듬고 극복해나가는가에 방점을 둔 채 영화의 중·후반부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이 부분은 상업적으로 꽤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배우들의 농익은 감정연기가 신파에 잘 어울리고, 울렸다가 돌연 웃기는 대사의 힘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소원의 같은 반 친구 영석(김도엽)이 동훈 앞에서 사고 당일 소원과 같이 등교하지 않은 걸 자책하며 엉엉 우는 장면이다.
성폭행 당하고 나서 남자라면 아빠마저 피하는 소원을 위해 인형 복을 입고 아이를 달래주는 동훈의 노력이나 어린 소원이 나름대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과정도 눈가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이런 신파성 휴먼드라마에 약간의 사회드라마도 입혔다.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기삿거리만 된다면 벌떼처럼 달려드는 언론의 모습이나 피고인이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감경하는 재판부의 성의없는 판결 등도 스치듯 보여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