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는 과학계의 예상대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일찍이 예견했던 영국의 피터 힉스(84) 에든버러대 명예교수와 벨기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80)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에게 돌아갔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1964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제기해 해마다 유력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지난 49년 동안 가설로만 존재했던 '힉스 입자'는 최근 국제공동 연구에서 마침내 입증되면서 올해는 수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쳐졌다.
힉스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종류와 입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들을 설명하는 현대 이론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힉스는 스위스에 있는 유럽원자핵 공동연구소(CERN)의 '물리학 레터'를 통해 이 같은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가설로 내놨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물질의 기본입자 중 유일하게 관측되지 않아 오랜 기간 가상의 존재로만 여겨졌다.
2008년 CERN의 대형 강입자충돌기(LHC) 가동은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CERN은 지난해 7월 대형 강입자 충돌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를 99.999994% 확률로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올해 3월에는 이 입자가 힉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일본 도쿄대학과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등 국제연구팀도 최근 힉스 입자의 질량과 '스핀(소립자의 자전) 값' 분석을 통해 힉스의 발견이 학술적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힉스는 자신의 가설이 마침내 입증되자 "(내가) 옳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잉글랜드 뉴캐슬 태생의 힉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3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고서 1996년부터는 명예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기관지 천식과 BBC 음향기술자인 부친을 따라 거주지를 자주 옮긴 영향으로 홈스쿨링을 받았다.
청소년기에 브리스톨에 정착해 코섬그래머스쿨을 다니면서 이 학교를 나온 양자역학의 권위자 폴 디랙의 영향을 받아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에는 에든버러대와 임페리얼칼리지, UCL대 등에서 연구와 강의 활동을 병행했다.
1960년대부터 원자 단위 이하의 보이지 않는 물질의 세계에 연구를 집중해 소립자 사이의 상호작용과 질량이 부여되는 과정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984년에는 영국 물리학회가 수여하는 러더퍼드 상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지역을 빛낸 공로로 에든버러시로부터 에든버러 상을 수상했다.
연구 활동 외에도 강대국의 핵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핵무기 금지 운동에 앞장섰으며, 환경보호 운동단체인 그린피스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이스라엘 울프 재단으로부터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팔레스타인 억압정책에 항의해 수상을 거부한 일화도 있다.
무신론자인 그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언 레더먼이 자신의 책에서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로 표현하자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사양했고, 힉스 입자의 존재를 무신론적 주장에 활용하는 시도에도 반대한 바 있다.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성품의 힉스는 노벨상 수상 발표에 앞서 언론의 취재 요청을 피해 휴대전화도 꺼놓고 지인들과 휴가를 떠났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그는 최근 천식 발작으로 집 밖에서 쓰러지기도 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언론의 관심이 쏟아질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에든버러대의 동료 물리학자인 앨런 워커 교수는 "관심이 집중될 것에 부담을 느낀 힉스 교수가 동료인 나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잠적했다"고 전했다.
공동 수상자인 프랑수아 앙글레르(80)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는 1964년 로베르 브라우트(1928∼2011) 교수와 함께 힉스 입자 발견의 실마리를 여는 연구 성과를 얻었다.
앙글레르는 1995년 브뤼셀 자유대에서 전자·기계 공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했으며 1959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코넬 대학에서 처음에는 브라우트 교수의 연구 조교로, 나중에는 조교수로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이후 브뤼셀 자유대로 돌아와 브라우트 교수와 함께 본격적인 힉스 입자 관련 연구에 뛰어들었다. 앙글레르와 브라우트는 1980년부터 이론물리학 연구팀을 공동으로 이끌었다.
앙글레르는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88년 브뤼셀 자유대에서 명예교수직을 받았다.
앙글레르는 힉스 입자 메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2010년에 '사쿠라이 이론입자 물리학상'을 힉스, 브라우트 등 관련 연구자 5명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그는 또 2004년에 힉스, 브라우트와 함께 물리학 부문 울프 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1964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제기해 해마다 유력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지난 49년 동안 가설로만 존재했던 '힉스 입자'는 최근 국제공동 연구에서 마침내 입증되면서 올해는 수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쳐졌다.
힉스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종류와 입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들을 설명하는 현대 이론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힉스는 스위스에 있는 유럽원자핵 공동연구소(CERN)의 '물리학 레터'를 통해 이 같은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가설로 내놨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물질의 기본입자 중 유일하게 관측되지 않아 오랜 기간 가상의 존재로만 여겨졌다.
2008년 CERN의 대형 강입자충돌기(LHC) 가동은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CERN은 지난해 7월 대형 강입자 충돌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를 99.999994% 확률로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올해 3월에는 이 입자가 힉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일본 도쿄대학과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등 국제연구팀도 최근 힉스 입자의 질량과 '스핀(소립자의 자전) 값' 분석을 통해 힉스의 발견이 학술적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힉스는 자신의 가설이 마침내 입증되자 "(내가) 옳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잉글랜드 뉴캐슬 태생의 힉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3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고서 1996년부터는 명예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기관지 천식과 BBC 음향기술자인 부친을 따라 거주지를 자주 옮긴 영향으로 홈스쿨링을 받았다.
청소년기에 브리스톨에 정착해 코섬그래머스쿨을 다니면서 이 학교를 나온 양자역학의 권위자 폴 디랙의 영향을 받아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에는 에든버러대와 임페리얼칼리지, UCL대 등에서 연구와 강의 활동을 병행했다.
1960년대부터 원자 단위 이하의 보이지 않는 물질의 세계에 연구를 집중해 소립자 사이의 상호작용과 질량이 부여되는 과정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984년에는 영국 물리학회가 수여하는 러더퍼드 상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지역을 빛낸 공로로 에든버러시로부터 에든버러 상을 수상했다.
연구 활동 외에도 강대국의 핵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핵무기 금지 운동에 앞장섰으며, 환경보호 운동단체인 그린피스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이스라엘 울프 재단으로부터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팔레스타인 억압정책에 항의해 수상을 거부한 일화도 있다.
무신론자인 그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언 레더먼이 자신의 책에서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로 표현하자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사양했고, 힉스 입자의 존재를 무신론적 주장에 활용하는 시도에도 반대한 바 있다.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성품의 힉스는 노벨상 수상 발표에 앞서 언론의 취재 요청을 피해 휴대전화도 꺼놓고 지인들과 휴가를 떠났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그는 최근 천식 발작으로 집 밖에서 쓰러지기도 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언론의 관심이 쏟아질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에든버러대의 동료 물리학자인 앨런 워커 교수는 "관심이 집중될 것에 부담을 느낀 힉스 교수가 동료인 나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잠적했다"고 전했다.
공동 수상자인 프랑수아 앙글레르(80)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는 1964년 로베르 브라우트(1928∼2011) 교수와 함께 힉스 입자 발견의 실마리를 여는 연구 성과를 얻었다.
앙글레르는 1995년 브뤼셀 자유대에서 전자·기계 공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했으며 1959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코넬 대학에서 처음에는 브라우트 교수의 연구 조교로, 나중에는 조교수로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이후 브뤼셀 자유대로 돌아와 브라우트 교수와 함께 본격적인 힉스 입자 관련 연구에 뛰어들었다. 앙글레르와 브라우트는 1980년부터 이론물리학 연구팀을 공동으로 이끌었다.
앙글레르는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88년 브뤼셀 자유대에서 명예교수직을 받았다.
앙글레르는 힉스 입자 메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2010년에 '사쿠라이 이론입자 물리학상'을 힉스, 브라우트 등 관련 연구자 5명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그는 또 2004년에 힉스, 브라우트와 함께 물리학 부문 울프 상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