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만 해도 침체된 구도심이었던 인천시 중구 개항장 일대 거리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2009년에 개관해 인천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인천개항박물관 등이 이 지역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점차 들어서고 있는 소규모 공방, 카페, 박물관 등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선보이며 이 일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20일과 21일, 인천시 청일조계지 계단부터 신포시장까지 둘러봤다. 최근 새로 생겨난 많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100여m의 거리에 4개가 위치한 곳도 있었다.
곳곳에 새로 생긴 공방과 박물관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에서 공방 등의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이들은 한목소리로 "개항장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매력이 있다"고 했다.
개항장 일대에 가장 많이 들어선 것은 '카페'다. 하지만 이 지역 카페는 일반적으로 커피 등의 음료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일반적인 카페와는 달랐다.
청일조계지를 가르던 계단 중턱에 위치한 '낙타사막'은 비어 있던 집을 매입해 2011년 개관했다. 내부 디자인을 주인 김홍희(45)씨가 직접했다. 각종 미술 서적을 읽을 수 있도록 북카페 역할을 하고 있다.
2층에서는 종종 '소규모 영화제'가 열리기도 한다. 중구청 뒤편에 있는 '담쟁이넝쿨' 카페에는 다람쥐와 토끼, 이구아나, 여러 종의 새 등이 있는 '미니동물원'이 있다.
중구청에서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팟알'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19세기 후반 지어진 하역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팟알' 외벽에는 이 건물이 등록문화란 것을 알게 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팟알 맞은편에는 지난달 초 건축·인테리어 카페 '4B'가 문을 열었으며, 여기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카페 '라온'이 개업 준비를 하고 있다.
4B는 건축 인테리어 카페답게 목조가구와 각종 인테리어 소품 등이 전시돼 있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정은경(41·여)씨는 "목조 건축과 인테리어 작품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카페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 뿐만 아니라 최근 이 일대에 문을 연 카페들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인천근대건축전시관 앞에는 서각, 규방공예, 도자기 등 전통공예 공방과 카페가 어우러진 '써니공방카페'가 생겼다. 이곳을 운영하는 박서니(51·여) 서각작가는 "차이나타운 관광객이 이쪽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 지역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7월 문을 연 'SOHO63'은 카페이지만 갤러리 역할도 한다. 주민들이 공방에서 만든 작품이나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내리교회 인근에 위치한 '파란광선'은 설치미술가 길다래(31·여)씨가 운영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전시회를 열고, 소규모 콘서트를 다섯 차례 열기도 했다.
'카페 오리날다'는 주말마다 사진전을 열고 있으며, '포그시티'는 피자와 스테이크 등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카페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예술공간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중구청 정문 건너편에 두 개의 공방이 2011년부터 자리를 잡고 있다. '한지사랑채'와 자수공예를 하는 '비단공방'이다.
한지사랑채를 운영하는 한지공예가 박승희(52·여)씨는 인천 동구 배다리에서 7년간 작은 공방을 두고 작업을 해오다가 '가장 인천스러운 곳'을 찾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방 안에는 한지를 뜯어붙이는 방식으로 그린 그림, 기와를 닮은 곡선이 있는 한지그릇 등 한지를 이용한 작품이 가득했다.
한지사랑채에서 아트플랫폼 방향으로 이동하면 지난 18일 개관한 '백산박물관'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고려청자를 비롯한 공예품, 조선시대 생활가구 등 정도원씨가 수십 년 동안 수집한 골동품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2010년 창단한 극단 '다락'은 2011년 7월 소극장 '떼아뜨르 다락'을 개관했다. 개항장 거리에서 하나뿐인 소극장이다. 올해 연극 '열여덟 번째 낙타', '귀여운 장난' 등을 상연했다.
오는 12월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백재이(47·여) 떼아뜨르 다락 대표는 "개항장 거리의 빈 공간들이 채워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아직까지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떼아뜨르 다락에서 신포로를 따라 신포시장 방향으로 가면 선광갤러리, 상우재 등의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신포문화의 거리 끝자락으로 가면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벌이는 청년플러스의 '열린실험실'도 찾을 수 있다.
개항장 거리에서 새롭게 터를 잡은 이들은 한목소리로 개항장이라는 특수성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이야기했다.
낙타사막을 운영하는 김홍희(45)씨는 "개항장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지역은 작가들이 작업하거나, 소규모 문화공간을 만들기에 좋다"며 "최근 카페나 갤러리 등의 공간이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 자연스럽게 문화적 요소가 풍성해질 것"이라고 했다.
'SOHO63'을 운영하는 이호준(32)씨는 "개항장 거리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흐르는 곳이면서도 서울의 인사동이나 삼청동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인천 중구청에 따르면 관동과 중앙동, 북성동·동인천동·신포동 일부를 포함한 개항장 문화지구에 위치한 문화공간은 2011년 37곳, 지난해 51곳에서 현재 57곳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손동혁 본부장은 "최근 이 지역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며 "특히 젊은층들이 소규모 카페 등을 개업하는 경우가 눈에 띄는데,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점과 개항장이라는 독특한 장소적인 매력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중구청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항장 활성화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중구청은 '인천개항장 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에 따라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12곳의 문화공간에 조세 감면, 융자, 보조금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써니공방카페' 박서니 대표는 "개항장 거리가 문화특구로 지정된 후 서울 인사동과 같은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곳에 공방을 열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83년부터 신포동에서 재즈클럽인 '버텀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허정선 대표는 "개항장 거리가 예술가 공간에서 상업화된 도심으로 변질된 서울 홍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팟알 백영임 대표는 "새로이 정착한 이들이 개항장 거리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더 장기적인 문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단기적인 이벤트성 정책보다,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항장 거리의 발전을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운·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