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의 심장부인 내셔널 몰에서 열린 '우리를 그만 감시하라'(StopWatching.US) 행사에서 예술가 단체인 '내셔널 블랙 LUV' 사무국장인 키몬 프리먼이 사회를 보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시민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1천여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빅 브라더' 흉내를 그만 내세요.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소설작품이지, 지침서가 아니잖아요"(마이크 이월·필리델피아),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무슨 상관입니까. 이것은 정치이슈가 아니라 헌법이슈입니다"(일라이 스팀슨·뉴욕)

26일(현지시간) 오후 1시께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의 심장부인 내셔널 몰. "미국 정부는 스파이행위를 당장 그만두라"는 문구의 셔츠와 피켓을 든 1천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바로 전 유니언 스테이션 역에서 집회를 끝내고 이동한 시민단체연합 '우리를 그만 감시하라'(StopWatching.US) 소속 회원들이었다. 전직 미국 정보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도·감청 의혹을 폭로함에 따라 미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를 규탄하기 위한 대규모 시위가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특히 NSA가 세계 주요 35개 정상급 인사들을 감청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불거진 가운데 열린 탓에 이번 행사에 쏠리는 내외신의 관심은 매우 컸다. 유럽과 아시아 주요국들의 방송기자들이 대거 장사진을 치며 취재경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00여개의 시민·인권단체 회원들이 주축이었으나 대학생들과 샐러리맨, 성직자들도 눈에 띄었다. 워싱턴에 관광하러온 여행객 일부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공대를 다니는 20대의 일라이 스팀슨은 연합뉴스 기자에게 "헌법을 읽어보면 이 정부가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지르는지 금방 알게 된다"고 말했다.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와 4조(프라이버시 보호)를 정면으로 위한 위헌적 행위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이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인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에너지 정의연대'를 이끄는 마이크 이월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과 너무나 닮은 꼴"이라며 "당장 NSA 기밀수집 행위에 대한 전면조사와 청문회를 벌여 스파이 행위를 한 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흥분했다.

이날 행사는 오후 1시를 약간 넘겨 자유언론협회 크레이그 아론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됐고 이어 러시아에 망명 중인 스노든이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스노든은 "오늘 미국을 통하는 전화는 NSA의 기록에 남는다. 미국을 통하는 모든 인터넷 활동도 NSA의 손을 거친다. 의회 대표들은 이를 감시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틀렸다"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예술가 단체인 '내셔널 블랙 LUV' 사무국장인 키몬 프리먼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는 정치계와 예술계, 주요 시민·인권단체 인사 30여명이 나와 정부의 도·감청행위를 비판하는 릴레이 연설을 이어갔다.

특히 스노든과 같은 NSA 요원 출신으로 내부 고발자로 유명한 토머스 드레이크와 미국 연방수사국(FBI)를 윤리위반 혐의로 고발한 제슬린 래닥, 지난 2008년 동성애자임을 밝힌 이후 전역을 강요받은 한국계 댄 최(Dan Choi) 전 중위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정계에서는 저스틴 어매시 공화당 하원의원, 두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데니스 쿠치니치 전 하원의원과 개리 존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예술계에서는 작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나오미 울프, 시인인 말라키 버드 등이 나왔다. 스노든의 부친 론 스노든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는 후문이다.

연설 중간 중간에 로스앤젤레스에 활동하는 팝 그룹인 '야트'와 소울 뮤직 맨드인 '블랙 앨리' 등이 무대에 올라 화려한 음악을 선보였다.

연설에 나선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날이 NSA의 정보수집 근거가 된 애국법(Patriot Act)이 시행에 들어간지 12주년이 되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를 철폐할 것을 호소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 워싱턴 법률사무소의 로라 머피는 "두려워하는 시민은 힘이 없는 시민"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힘이 없지도 않다"고 역설했고, '미래를 위한 투쟁' 단체의 홈스 윌슨은 "미국 정부의 감청행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라며 시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배우 존 쿠삭과 매기 질렌할, 윌 휘튼 등은 미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를 규탄하는 홍보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게시했다. 주최측은 지금까지 시민 57만여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당초 수천명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천여명이 집회현장에 나와 참석이 다소 저조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큰 관심과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들도 없지 않다.

워싱턴 시내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로라 힐은 "시민단체 활동하는 사람들만 모인 것 아니냐"며 "미국 시민 가운데에는 미국의 정보력이 전같지 않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안을 균형있게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