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넉넉한 품을 펼친 독산. 오산 북쪽에 우뚝 솟은 독산에서는 독산 자락과 화성 병점은 물론 멀리 동탄신도시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임진왜란때 권율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독산성과 세마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독산은 풍수적으로도 뛰어난 산으로 꼽힌다.
산 높지 않고 구릉 많은 곳
난립 건물 맥 끊어 안타까워

시청 터 산수 고려하지 않아
금암리 지석묘군 명당 자리

도시의 상징 독산성 福 불러
주봉 멋지고 양 봉우리 장관


산이 높지 않아 기운이 부족한 곳을 독산(禿山)이 품어주니 주민들에게는 복이로다.

하지만 우후죽순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서 가뜩이나 부족한 땅의 기운을 끊으니, 이곳 역시 안타까움 가득하네.

오산시는 지난 1989년 1월 1일 오산읍에서 승격해 오산시가 되면서 비로소 독립된 자치단체가 됐기 때문에, 24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면적도 42.7㎢에 불과해 이웃 화성시(688.4㎢)는 물론 수원시(121.01㎢)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인구는 20만을 조금 넘는 규모여서, 수도권에서는 비교적 작은 도시로 꼽힌다.

하지만 오산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유서깊은 지역이고, 최근 들어서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교통의 요지로 꼽히면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곳곳에 공장들이 들어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산은 전체적으로 산이 높지 않고 낮은 구릉이 많아요. 그만큼 산의 기운이 부족하니 걸출한 인물이 나오기 어려운 곳이지요."

오산 둘러보기는 그리 큰 기대감 없이 시작됐다. 워낙 면적이 작은데다가, 눈에 띄는 건물이나 묘가 몇곳 없어서 풍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소재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산 풍수여행은 오산시청이 출발지가 됐다. 시청 인근은 택지개발지구로 개발돼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하게 들어선 곳이다. 오산시청은 인근 중앙동 구도심에 자리해 있다가 지난 200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워낙 넓은 평지에 택지개발이 진행됐고, 그 한가운데에 시청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간 셈이에요. 주변에 이렇다 할 산이나 물줄기도 없는 택지개발지구이다 보니 풍수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시청을 출발해 구도심을 둘러보고는 금암동에 자리한 '금암리 지석묘군'(경기도기념물 제112호)을 찾았다.

인근 외삼미동 지석묘군과 함께 오산시에 자리한 대표적인 지석묘군으로 꼽히는 이곳에는 모두 11기의 지석묘(2기는 추정)가 밀집해 있다.

지석묘가 자리한 산자락 일대는 고인돌 보존을 위해 '고인돌 공원'이 만들어져 지금은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 운암택지개발지구 한가운데 자리한 오산시청 청사 전경.
"다른 지석묘들 처럼 이곳 지석묘들도 맥을 타고 올라서지 않고 평지에 가까운 산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어요.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원래의 지형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산자락 아래 앞이 트이고 주변을 언덕들이 둘러싼 아늑한 곳을 택했으니 고대인들도 본능적으로 풍수적으로 좋은 자리를 찾은 셈이에요."

조광 선생의 설명처럼 여러 기의 지석묘들이 자리한 곳은 여계산 자락이 품을 펼쳐 푸근하고 안정된 곳이다. 지금은 세교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이 사방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지만, 조금씩 남아있는 낮은 구릉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여전히 따뜻하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지석묘군을 나오니 큰길가에 '세교2택지개발지구' 사업이 곧 진행될 것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인근의 가장2산업단지와 세교2택지개발지구 사업이 끝나면 이곳 일대는 오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예정이다.

풍수적으로 볼때 개발이 진행될수록 많은 땅들이 파헤쳐지고 맥이 끊길 수밖에 없어서, 한편으로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다음으로 오산시 궐동의 궐리사(闕里祠, 경기도기념물 제147호)를 찾아갔다. 1792년(정조 16년)에 건립된 이곳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10년전만 해도 오산의 변두리 한적한 곳이었던 이곳은 이제 상가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번화가가 됐다.

때문에 궐리사의 분위기도 예전처럼 조용하고 경건한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궐리사 앞마당의 500년 가까이 된 커다란 은행나무는 예전 모습을 지키며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어 위안이 됐다.

"이곳 궐리사는 특이하게도 사당인데도 산의 맥을 타고 자리를 잡았네요. 풍수에서는 사당을 음택이 아니라 양택으로 여기기 때문에 산소처럼 맥을 타는 자리가 아니라, 주택처럼 평지에 자리를 잡게 하지요. 중국쪽의 영향을 받아 그리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남아요."

궐리사가 자리를 잡은 완만한 언덕은 궐리사 뒤쪽으로 맥이 이어져 언덕 너머 물향기수목원에 닿는다. 세교신도시 횡단도로가 가르지 않았다면, 고인돌공원이 있는 여계산 자락으로 이어질 맥이다. 하지만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

▲ 고인돌 공원으로 조성돼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금암리 지석묘군.
"다른 도시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우리나라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이렇게 맥을 뚝뚝 끊어 놓는게 큰 문제예요. 오산처럼 기운있는 산이 별로 없는 곳은 그나마 남아있는 맥마저 끊어 놓으면 좋은 인물 나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궐리사를 나와 취재팀은 오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독산성으로 향했다.

독산성과 세마대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흰쌀을 말에 끼얹어 산성 내에 물이 많은 것처럼 속임으로써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독산성에 오르자 북쪽으로 수원, 동쪽으로 화성 병점과 동탄신도시 일대, 서쪽으로 서오산 지역과 화성 봉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과 왜군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일만큼 군사적인 요충지로 꼽힌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남쪽편으로 오산이 자리해 있지만 낮은 구릉이 감싸고 있어 시가지는 일부만 보인다.

▲ 공자를 모신 사당인 오산 궐동 궐리사는 풍수적으로 양택으로 꼽는 사당임에도 맥을 타고 자리한 점이 이색적이다.
독산성 아래에서 산성 성곽이 있는 곳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어 관광객들이나 나들이 나온 주민들이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성 안에는 삼국시대에 창건됐다는 전통사찰 보적사가 자리해 오는 이들을 반긴다.

"독산은 참 잘생긴 산이에요. 주봉의 생김도 부드럽고 좋은데다가, 옆쪽으로 거느린 작은 봉우리가 장관을 배출한다는 영상사(領相砂)를 이루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 산이 자리해 있는 것은 오산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에도 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산의 기운이 좋아 산을 올라오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는 것이에요."

독산성 서쪽에서 내려다보니 서오산을 사방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들이 한눈에 보인다.

고속도로 옆으로 황구지천이 느릿느릿 흐르고, 주변에는 크고작은 공장들이 서 있다. 독산 자락과 황구지천이 품어주는 풍경은 고속도로와 공장들이 내는 딱딱함마저 여유롭게 풀어준다.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사람들과,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을 품어주는 자연이 대비되며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글·사진/박상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