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영종도 난민지원센터.
영종도 지원센터 개점 휴업 '국제적 망신'
난민인권분야 제도·행정적 문제 '수두룩'
민·관·기업연계… 독립적 지원기관 필수
정체성·문화 등 고려 지원체계 구축 절실


"1분 동안 15명의 난민이 집을 잃었습니다."

"1분, 난민 가족들에게 생명과 안전, 희망과 위안을 전할 수 있는 시간, 함께 하는 손을 내민 여러분의 1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찰나입니다."

이상의 글들은 UNHCR 공식 홈페이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문구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고, 우리들의 인도주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지원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난민'은 사실 우리와 너무 가까운 존재다. 우리에게 탈북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해외에선 난민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우리네들은 난민의 생존을 넘어 그 소중한 가치인 인권을 철저히 묵살하고 있다.

인천 영종도에 입지한 난민지원센터가 개점 휴업중이란 사실이 대표적인 예다.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우리 스스로 만든 난민법이 시행된 지 불과 몇 개월여 만에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등 만신창이가 돼 가고 있다. 또 난민 재정착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난민법은 '제노포비아(이방인 혐오)'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난민들이 한국에 수용되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될 것이라는 생뚱맞은 주장이 온·오프라인에서 만연하고 있다.

이에 경인일보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외로운 섬'처럼 스스로 격리되거나 혹은 우리네 삶의 터전 인근에서 '인공 위성'처럼 떠돌고 있는 한국의 난민실태를 집중 해부하기로 했다.

난민 발생지인 미얀마와 재정착 난민을 수용하는 일본 등을 대탐사한 창간 기획 '코리아 고스트, 난민' 시리즈가 독자들을 만나게 된 이유다.

취재진은 '난민촌의 천국'인 태국·미얀마 접경도시 메솟의 멜라캠프를 방문한 지 5년여가 지난 2013년 10월, 또다시 미얀마 난민촌을 찾아 나섰다.

더 나아가 미얀마 국경 인사이드에서 공동체 복원에 나선 반군 군사기지와 수도인 양곤을 전격 방문해 생명과 안전, 희망과 위안을 받을 수 없는 난민들을 만났다.

이어 한 달여 만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보트피플로 난민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난 2000년부터 미얀마 재정착 희망 난민을 전격 수용한 일본 도쿄로 날아갔다.

일본에 망명한 각국의 난민들을 지원키 위해 헌신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가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앞서 난민인권센터와 피난처, 그리고 UNHCR 등 국내 난민지원 유관기관들이 소재한 서울과 인천 송도, 그리고 부천과 김포, 안산 등지를 누비며 국내 난민실태를 취재했다.

지난 7월 난민법 시행을 앞둔 2012년 10월께부터 '난민'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안고 힘들게 앓아왔던 1년여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2008년 5월 인권도 환경도 없는 검은 지대(ZONE)인 '혼돈의 땅' 태국 북서부 지역 국경과 메콩강 유역을 취재할 때 미얀마 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삶을 처음 접하고 7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 뒤 '언젠가는 난민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보겠다'는 다짐을 최근에야 이행하게 된 것이다.

2007년 '희망의 탈북루트, 그 현장을 가다' 취재로 중국과 인디차이나를 떠돌아 다니는 한국판 난민 '탈북자'의 실태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기자의 취재 경험도 한몫했다.

'코리아 고스트, 난민' 시리즈를 보도하는 과정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몇 가지 유의사항을 확인했다.

우선 난민지원을 위한 민간·정부·기업·해외 인권단체 등 국제기구가 모두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고, 장기적으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 난민지원을 위한 독립적인 기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한국은 해외서 난민인정을 받는 탈북자 지원을 위한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는 만큼 난민들의 정체성·문화·고유성 등을 감안해 좀 더 나은 난민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의 난민지원을 위한 제도적 권한과 예산 등을 지방정부로 이양해 재정착 난민들을 사회복지망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넷째, 조속한 시일내에 재정착희망 난민 수용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국가 차원의 난민캠프 운영과 지원, 그리고 지자체별 재정착 지원 시스템을 구비토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난민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미얀마 난민 마웅저씨처럼 난민지위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첫 사례가 한국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에겐 인도주의적 보호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난민 보호국이 그들이 역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국은 최근 유엔난민기구 집행이사회 의장국에 선출되는 등 난민인권 분야에서 선진적이란 평가를 받게 됐다. 하지만 한국의 인권보호 수준은 턱없이 낮다.

난민보호 상황이 한 국가의 인권수준 척도가 될 수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의 난민에 대한 지원 전망은 시계 '0'다.

1초에 15명씩 발생하는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야 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이 재정착 난민을 수용하는 책임있는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줄 때 진정한 인권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선인들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 탓인지 난민문제가 다양한 호조건(?)속에서도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염두에 뒀는지 모르지만, 난민법 제정을 주도했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오전 10시 국회 귀빈식당 별실 1호에서 열린 '난민의 재정착과 사회통합에 관한 한·미·일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 인사말을 통해 "국내 난민문제뿐 아니라 전 세계 난민문제가 영구적으로 해결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으자"고 당부했다.

그는 또 "난민들의 아픔을 모두 보듬기에는 재정적·인력적·사회적 여건에서 현실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난민인권과 지원에 대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를 재형성하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한민족의 역사는 디아포라의 역사다.

우리 민족들이 러시아 등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피난처를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 인권선진국이란 허명을 좇기 이전에 백의민족의 그 위대한 사랑(愛)으로 세계를 품어야 한다. 하루 빨리 '대한민국이 난민 발생국에서 난민 보호국'으로 자리매김되는 그 날을 고대해 본다.

/기획취재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