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최대 북페스티벌의 자리를 차지한 파주북소리. 2011년 파주북소리가 처음 열렸을 때 30만명이 출판단지를 찾았지만 올해는 50만으로 방문객이 늘었고, 3년만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2014년 대표 문화관광축제의 유망축제로 선정됐다
우후죽순… 한계 드러낸 '축제공화국'
1981년 5일간 열린 '국풍81'이 모태
지자체 경쟁적 유치 전문성 떨어져

해외축제 유입 차별화… 변화의 조짐
출판인들 1989년에 도시 조성 시동
샛강·습지보존 생태출판공간 탄생

민간 주도 성공가도 '파주북소리'
출판단지 250여개 업체들 '의기 투합'
정부·市 아낌없는 지원 시너지 효과


국내에서 연간 개최되는 축제는 1천개가 넘는다.

인구 5천만명에 9개도, 3개 특별시, 10개 광역시로 이루어진 작은 국가에서 축제가 1천개라니, 무척 많아 보인다.

그래서 한때 우후죽순 마구잡이로 축제를 만드는 행태를 비꼬아 '축제공화국'이라는 말도 등장했었다. 그러나 옆나라 일본은 대략 2만개, 프랑스 10만개, 스페인은 2만~30만개의 축제가 1년동안 열린다고 한다.

이들 국가는 모두 인구가 수억명이 되니 그렇겠다 싶지만, 인구가 우리나라의 3분의1 수준인 네덜란드에는 연간 5천개의 축제가 열리고, 인구가 6분의1밖에 안되는 덴마크에서도 우리나라보다 3~4배 많은 축제가 열린다. 숫자를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정규모 이상 축제의 개수가 비교적 정확히 집계된다. 축제가 열리는 시기와 장소, 프로그램 등의 정보를 관광공사나 문화체육관광부, 축제가 열리는 시·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내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축제의 주최자가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관(官) 주도형'축제다.

관주도형 축제의 모태는 1981년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열린 '국풍81(國風81)'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에서는 각종 공연, 대회, 장터와 야간 가요제 등이 5일동안 이어졌다.

행사기간 중 여의도 일대는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됐고, 야간 통행금지도 일시 해제됐다. '민족 단합의 대합창'을 구호로 한 이 행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이 되던 해에 열렸다. 제5공화국이 광주에 쏠린 국민의 관심과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마련한 관제축제였다.

'유사이래 가장 거대한 놀자판'으로 기억되는 이 축제는 물량 중심의 전형적인 동원행사로, 90년대 전국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역축제를 만들 때 영향을 미쳤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축제의 개수는 급격히 늘었지만 형식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공연팀이 초청되고, 장터가 열리고 인력이 동원됐다. 축제가 많아지고 관련 예산이 증가하는 동안 축제는 관에서 주최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관주도형 축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축제를 주도하면 예산 확보와 운용이 보다 수월하고, 축제기반 시설 확충과 안전, 교통 등 대민 지원이 용이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의 지역 축제들은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전문성 부족이다.

지역축제 대부분은 지자체 관련 부서에서 축제 업무를 담당한다. 축제 담당자로 배치되면 기본적인 업무교육을 받고 축제를 기획, 관리한다. 참신한 기획이나 축제 트렌드를 고려한 프로그램을 기대하기 어렵다.
 

담당자가 바뀌면 업무의 연속성도 끊어져 축제는 제자리걸음을 하게된다. 세계축제협회 한국지부 정강환 회장은 "외국의 경우 축제 재단이 독자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축제를 기획하고, 1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를 위해 300명이 일하는 곳도 있다. 반면 우리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3일~1주일 정도 교육을 받고 축제를 치른다. 축제에 쏟는 정성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획일적인 축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해외의 축제문화가 유입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지자체는 차별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축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전문기관과 협력하고 자문기관을 두거나 전담기관을 설치했다. 그러나 여전히 발목을 잡는 것은 예산이다.

축제 담당자 중 대다수는 축제 기획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예산을 꼽는다. 예산이 부족해 기획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예산 확정 시기까지 의사결정을 미루어야 한다. 축제 예산을 거머쥔 지자체는 어느 곳이나 같은 시기에 예산이 확정되지만, 축제가 열리는 시기는 다양하기 때문에 상반기에 축제가 열리는 곳은 준비할 시간이 빠듯하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관련 예산이 들쑥날쑥해 진 이후에는 자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숙제가 됐다. 축제문화가 발달한 외국의 경우 재단의 기금이나 민간의 기부, 기업의 협찬으로 축제 예산 대부분을 마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부나 협찬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원의 한 축제기획 담당자는 "기업은 이익이 뚜렷하지 않으면 협찬을 꺼리고, 기부금에 대한 인식과 규제 때문에 기부하는 기업이나 민간인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최근들어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춘천 마임축제, 거창국제연극제 등 민간 주도형 축제가 생겨나고 있다. 도내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리는 '파주북소리' 역시 민간 주도형 축제다.

파주 출판도시는 출판기획, 편집에서부터 인쇄, 물류,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하나로 묶어 대한민국의 출판문화 산업 발전을 이루어내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목표로 기획됐다. 뜻 있는 출판인들이 1989년부터 힘을 모아 출판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해 2003년 출판도시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만여명의 종사자들이 250여개 출판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산업단지로 분류돼 있지만 문화관광부 산하 기관이기도 한 이 곳에서는 각 출판사마다 책방을 운영하며'책과 사람,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이 되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뿐 아니라 갈대샛강과 습지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친환경 생태도시이자, 한국의 건축문화를 바꾼 건축도시이기도 하다.

파주출판도시 사람들은 책과 지식문화의 창조공간인 출판도시의 격조에 걸맞은 지식 문화축제를 만들어내고, 출판도시를 명실상부한 아시아 책의 허브로 만들자는 목표로 3년 전 '파주북소리'를 개최했다.

이에 앞서 2003년 5월 '파주어린이책한마당'을 열었고, 2006년 가을에는 '파주북시티 책잔치'를 개최했다. 이때문인지 2011년 파주북소리가 처음 열렸을 때 30만명이 출판단지를 찾았다.

올해는 50만명으로 방문객이 늘었고, 3년만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2014년 대표 문화관광축제의 유망축제로 선정됐다.

명실공히 아시아 최대 북페스티벌의 자리를 차지한 파주북소리는 다양하고도 기획력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올 가을 열린 축제에서는 출판도시 100여개 출판사 건물과 야외특설무대에서 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시·강연·공연·퍼포먼스 등 200여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축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식난장'을 비롯해 아이들이 잔디광장을 책 놀이터 삼아 뛰어다닌 '유아 독서캠프', 부모가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전시 '빅북 : 한 손 너머의 책' 등의 행사와 더불어 고지도 특별전 '고지도, 상상의 길을 걷다', 이영 작가의 '책의 소리 그리고 꿈' 등 전시가 관객과 만났다.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와 김연수가 신작 소개와 서로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히라노 게이치로&김연수 북토크', 명사들의 읽기 경험담과 노하우를 나누는 강연 '독(讀)한 습관 (최진석)', 양국 대표시인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다니카와 슌타로 & 신경림 한일 시인 대담' 등 특별강연에도 큰 관심이 쏠렸다.

또한 올해는 출판 관련 지식 및 정보 비즈니스 교류와 출판전문인력 향상, 일자리 창출의 장이 될 '북콘텐츠페어'를 진행했다.

독립출판, 아트북, 디자인북, 전자책, 팝업북 등 북 페어에 참가하는 참가사들의 다양한 콘텐츠 전시와 출판산업&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 매칭사업, 출판사들의 야외 책 판매 부스 마켓 등이열렸다.

이상 파주북소리 사무총장은 "산업단지로서의 출판도시의 기능을 담아 페어를 기획했다. 첫 시도이니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파주북소리 사무국에는 8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축제기간동안 필요 인력을 확충한다. 축제가 끝나면 지난 축제를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다음 축제에 반영한다. 정부, 지자체의 지원과 함께 출판도시문화재단과 입주기업협의회, 민간기업의 협찬으로 예산을 마련한다.

이상 사무총장은 "민간에서, 게다가 3회밖에 안된 축제가 수십억원의 예산을 감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지속성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고, 더 많은 협력단체들, 아시아를 넘어 보다 다양한 국가와 연계해서 공동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력이 축제를 성공시킨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주시는 예산을 지원해주지만 우리의 축제에 대한 철학, 축제의 내용, 운영에 대해 신뢰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축제지원본부를 통해 안전, 대민, 주차, 교통, 위생 등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협력하면서 함께 축제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글/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