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다른 직업 생각해본 적 없어
IMF때 인생 최악 위기 손님 도움으로 극복
여유 생기자마자 '주 전공' 살려서 봉사
나보다 나누는 걸 좋아하는 아내덕에 즐거워
얼떨결에 받은 장관상… 더 많이 나눠야겠지요
무려 82조8천410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2012년 한해 동안 2조83억원을 기부했다.
매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미국 50대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물론, 누적 기부액만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이인자' 워렌 버핏 회장 역시 평생동안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85%를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한 해 수백억원을 빌 게이츠 재단에 쾌척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곤 한다.
우리 주변에도 마땅히 존경받을 만큼 값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한산성에서 20년 넘게 김밥 장사를 하며 모은 3억원을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위해 써달라며 어린이재단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는 각박한 세상에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또 김포의 한 주민센터에는 익명의 70대 노인이 쌀 10포대와 돼지 저금통을 놓고 홀연히 사라진 뒤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는 뜻을 뒤늦게 전달해 추운 겨울 꽁꽁 언 국민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지구 반대편 멀리에 있는 재벌이 수천억원을 기부하는 것보다도 이렇듯 자신의 일부를 주위 이웃에 나누는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용인 흥덕지구에서 중화요리 전문점 'J&J'를 운영하는 조병국(50) 사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짜장면을 만들어 전국에 나눴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조 사장의 무료 짜장면을 맛본 사람만 해도 25만명이 넘는다. 조 사장에게 그가 베풀 수밖에 없었던 짜장면의 의미와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봤다.
-짜장면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짜장면 가게를 운영했는데, 미처 돈이 없어 짜장면을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기꺼이 짜장면을 내주셨습니다. 중학교를 그만 두고 중국집에 취직해 배달원과 조리, 홀 웨이터 등 20년간 모든 분야를 섭렵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짜장면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나 다름 없지요."
-지금 운영하는 가게는 330㎡가 넘는 대형 레스토랑이다. 이렇게 일어서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누구나 그렇듯 인생에서 한번쯤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IMF 때 보증을 잘못 섰다가 모은 돈도 잃고, 집도 경매로 넘어갔어요. 빚은 산더미같이 쌓여 우울증도 생기고 극단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한번 밑바닥을 치면 다시 오르기 힘들다는 게 어떤 말인지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주방이 아닌 홀로 나와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는데, 식당을 찾은 손님이 어린 아이 때문에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이를 안아서 봐줬어요. 그게 고마웠던지, 단골손님이 돼 제가 가게를 옮기더라도 저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수십명의 단체 예약까지 해주면서 제가 빚을 청산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저만 잘 살 수는 없잖아요. 여유가 생기자마자 바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2006년에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제 주전공인 짜장면을 만들어 노인시설을 찾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하고싶다고 해서 무조건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짜장면을 싣고 갈 탑차, 선반, 소형냉장고 등 계산해보니 봉사를 위한 초기자금만 4천만원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1주일 전에 가서 미리 배식 위치와 방법, 인원도 점검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짜장면 봉사는 수원, 용인, 성남 등 주변으로 확대됐지요. '무료로 짜장면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복지시설에 삽시간에 퍼지더군요. 덕분에 부산, 대구, 삼척, 고성 등 전국을 돌았어요. 제일 먼 곳은 해남이었네요. 많으면 한달에 10번씩 봉사를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한번은 길이 너무 막혀 12시 점심 시간 배식 봉사가 계획된 곳이었는데,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시설에 도착했어요. 1급 지체 장애인 분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는데, 항상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된 분들이라 안절부절못하시더라고요. 그 때 이후로 봉사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겠다고 다짐했지요. 남다른 노하우도 생겼어요. 미리 인원을 점검한 뒤 그에 맞게 짜장면을 준비하곤 했는데, 글쎄 두 그릇을 먹고 싶어하는 인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무료로 나누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 짜장면이 맛있어서 몇 그릇 더 먹고 싶다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있나요. 요즘은 봉사를 갈 때 인원보다 넉넉히 준비해가는 노하우가 생겼지요."
-주변에 다 퍼주면 부인께서 그리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천생연분인지는 몰라도, 저보다 아내가 더 나누는 걸 좋아해요. 손도 커서 주변에 다 퍼주고 본인 몫은 챙기지 못할 정도로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요. 그래서인지 제가 더 신나고 즐겁게 봉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함으로 남아있어요.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는 걸 듣고도, 이미 약속된 시설로 봉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없었지요. 하지만, 장모님께서도 생전에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분이기에 진심을 알아주실거라 믿고 있습니다."
-남은 목표가 있나. 언제까지 봉사를 할 것인가.
"제가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 목표를 10만 그릇으로 세웠습니다. 운영하는 가게는 내팽개치고 봉사를 더 열심히 다닐 정도로 신나게 봉사를 했지요. 5~6년이 흘러 돌이켜보니 10만 그릇은 벌써 훌쩍 넘었더라고요. 대략 25만 그릇 정도가 됐는데, 목표를 달성하고도 그만 둘 수가 없네요. 아직 제가 받은 도움과 배려를 다 나눴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난해 말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어요. 봉사를 많이 했다며 상을 받으러 오라는데, 전 멋도 모르고 혼자만 덜렁 갔지요. 그런데 다른 수상자들은 가족, 친인척, 지인까지 모두 와서 축하해줄 정도로 대단한 상이더라고요. 얼떨결에 큰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더 많이 짜장면을 나눠야겠지요."
/글= 신선미기자
/ 사진= 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