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박성현기자
갑오년 설 연휴가 시작됐다.

일력으로 음력을 사용하던 민족이 양력의 삶을 살면서 겪는 시차와 그로 인한 문화적 착시 현상이 만만치 않다.

갑오년은 이제 시작인데 양력 새해가 밝자마자 '청마의 해'가 열렸다며 갑오년을 가불해 쓴지가 벌써 한달 가까이다.

양력 새해는 이미 치열하게 시작됐다. 지난 한달 정치권은 지방선거전에 돌입했고, 금융권은 전대미문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홍역을 앓는 중이다.

역사교과서 채택과 영화 '변호인'을 둘러싼 이념 대결은 치열하다. 우리를 향한 북한의 강온 전술로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고조되고 있다. 이렇듯 양력의 일상은 우리의 삶을 고단한 현안에 가둔다.

'설'이 반가운 건 이 때문이다. 양력의 한해를 보내는 결산과 맞이하는 준비로 정신없던 우리를 사람 곁으로 보내 위로하고 위안받는 시공간을 열어준다.

예전 '설 대이동의 시대' 처럼 국가적 소란은 없지만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천부적 교감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설 풍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을지언정 가족과 향토와 민족의 유대를 다지는 문화적 가치만은 여전한 것이다.

양력 새해가 새로운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적 의미라면, 음력 설은 인간적 유대를 확인하는 문화적 의미가 더욱 깊다.

이번 설에도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친지들과 모여, 고향 어르신께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주고 받으며 경쟁사회에서 피폐해진 인성을 재충전할 것이다. 양력 새해 이후 한 달쯤에 이렇듯 인간적 심호흡이 가능한 '음력 설'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가.

경인일보는 올 한해의 키워드로 '배려'를 선택했다. 경쟁사회가 박제한 인간적 단어가 많다. '배려'라는 낱말도 그 중 하나다. '배려'는 사람끼리 서로 생각하는 마음을 나누고 합치는 소통을 의미한다.

이번 '설'이 모처럼 '인간적 배려'에 대한 성찰과 체험의 시간이 되기를 빌어본다. 그래야 경쟁사회의 속박에서 숨을 쉴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