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나 자손이나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오。
군내면 명산리 '이한동 전 총리 생가'
아담한 기와집 'ㄷ'자 형태 안정적
풍수기반 지혜 돋보이는 전통가옥
신북면 만세교리 '조경 선생 묘'
깊은 산 숨은 듯 자리 '음택의 정석'
꾸밈없는 주변 청백리 청렴함 대변
가산면 금현리 '이항복 선생 묘'
명성에 비해 평범한 길가 자리잡아
맥 기운 약해도 푸근하고 평화로워
풍수지리학자들이 '좋은 기운이 넘치는 땅'으로 손꼽는 포천에는 이름난 명소들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포천' 하면 떠오르는 관광 명소, '산정호수'다. 경기북부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산정호수는 지금도 인근 명성산과 함께 수도권 주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명소중에 명소로 꼽힌다.
산정호수는 포천에서도 거의 북쪽 끝인 영북면에 자리잡고 있다. 포천시청에서 출발하면 30㎞ 가까운 먼 길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하지만 산정호수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산세가 수려해지면서 먼길을 달린 피로를 날려준다.
"풍수에서는 물을 재물로 봅니다. 산정호수가 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라고 하지만, 명성산과 어우러진 좋은 곳에 호수를 만들면서 포천에는 복이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이 준 선물을 잘 활용해 복을 더 불러들인 것이죠."
오랜만에 산정호수를 찾았다는 조광 선생이 호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푸근하다. 산정호수는 시원스러운 풍광으로 찾아오는 이를 반긴다.
제방 옆에는 억새가 우거져 겨울 바람에 살랑인다. 넓은 수면(水面)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호수 북쪽편으로는 명성산의 힘찬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 찬바람을 막아주면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명성산이 감싸 안은 산정호수는 호수의 부드러움과 산의 힘찬 기운이 어우러진 수려한 모습이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같다. 포천의 자연이 전해주는 행복이다.
이한동 전 총리의 생가는 포천 시가지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온 군내면 명산리에 자리해 있다. 생가와 함께 선친들의 묘역도 인근에 자리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명문가로 손꼽히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 도촌공파(桃村公派) 가문답게 묘역 앞에 커다란 신도비들이 위엄을 자랑하며 서 있다.
"묘역도 묘역이지만, 이 전 총리의 생가는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포천을 지날때 꼭 찾아올 만큼 명당으로 꼽힙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은 집이지만, 좋은 집터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곳이지요."
조광 선생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이 전 총리의 생가는 당초 기대했던 규모보다 훨씬 작은 아담한 기와집이다. 야트막한 산자락이 뒤를 두르고 있는데, 청룡과 백호가 에워싸고 있는 한가운데에 맞춘듯이 집터를 잡았다.
생가 남쪽으로는 널찍한 평지가 시야를 틔워주고, 그 너머로는 낮은 언덕이 '일자문성'을 이루고 있다. 멀리 왼쪽으로도 토채가 우뚝 서 있어 큰 인물이 나올 집터임을 확인하게 했다.
하지만 당초 집터 정면으로 길게 이어졌을 듯한 일자문성은 최근 묘지가 들어서고 개간이 이뤄지면서 중간이 잘려 아쉬움을 남겼다.
생가는 높지 않은 담장 안쪽으로 소담스러운 건물이 'ㄷ'자 형태로 자리해 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푸근하고 안정적이다.
"생가 건물이 동쪽이 터지고 서쪽이 막힌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전에 생기가 넘치는 볕을 받아들이고, 오후에 사그라드는 볕은 차단해 집안에 좋은 기운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풍수에 기반한 전형적인 전통 가옥의 형태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집의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 선생은 대사헌과 형조판서, 이조 판서 등을 지낸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포천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다시 포천땅에 묻힌 포천의 인물 중 한사람이다.
묘역은 신도비가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자리해 있다. 보통은 이름난 묘역이 큰길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자리해 있는 것과 달리, 조경선생의 묘역은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곳에 무슨 좋은 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그리 산세도 뛰어나지 않은 곳에 깊숙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묘역을 만나기 전까지 들었던 의구심은 산 모퉁이를 돌아 묘역을 만나는 순간 한꺼번에 허물어진다. 숨은 듯 자리해 있는 묘역은 그야말로 풍수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곳에 이렇게 숨어있는 좋은 음택 자리를 참 용하게도 찾아냈어요. 보세요. 풍수의 핵심인 입수(入首)가 기가막히게 기운이 넘치는데다가, 오른쪽으로 백호가 감아들고, 왼쪽으로 청룡이 더 힘차게 뻗어 휘감았어요. 그야말로 음택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네요. 게다가 묘역 주변으로 석물이나 돌계단 같은 인공적인 꾸밈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묘를 조성하고 관리해 놓은 것도 묘의 주인이나 후손들의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묘역을 둘러보는 조광 선생에게서 칭찬이 이어진다. 명문가 한양(漢陽) 조씨(趙氏) 가문의 한사람인 묘의 주인은 생전에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는데, 묘역에서도 역시 이런 기개와 청렴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이항복 선생의 묘는 마을 가장자리 한적한 길가에 자리해 있다. 임진왜란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피란길에 올랐고, 병조판서, 대사헌,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이항복 선생의 묘이기에 기대가 컸지만, 정작 묘역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마지막에 인목대비 폐위 사건으로 함경도 땅까지 유배까지 가서 생을 마감하신 영향이 있겠지요. 그리고, 문신의 묘는 맥의 기운이 넘치는 곳보다는 평온하고 화목한 곳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항복 선생의 묘가 그런 셈입니다. 맥이 기운차지는 않지만, 푸근하고 평화로운 곳이에요."
둘러볼 곳이 너무도 많은 포천이어서, 취재팀은 아쉬움을 남기고 포천 둘러보기를 끝냈다. 포천을 떠나며 조광 선생은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라는 말로 포천에 대한 애정과 포천편을 끝내는 아쉬움을 전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