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관계 안정성 크게 해쳐" 우려
기업 300곳중 86% 인건비 상승 예상
근로기준 법개정 추진까지 중기 부담
"관행개선 공감하지만 인력난 걱정"
지난해 말 노동계와 재계의 표정을 엇갈리게 만든 대법원의 통상임금 범위 확대 판단은 아직도 논란이 거세다. 기업들은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경영 악화 부담을 외치고 있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까지 기업에 추가 부담으로 가중됐다.
지난 18일 정부와 여당은 갑자기 근로시간을 줄일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법안 시행 유예를 주장했다. 또 일감이 몰릴 것에 대비해 예외 규정을 두자고도 했다.
그러나 야당은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라며 반대했고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통상임금, 누구에게 유리한가?
▲대법원, 통상임금 범위 확대
=지난해 12월 18일, 노동계는 쾌재를 부른 반면 재계는 발칵 뒤집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면서 수십년간 관행처럼 여겨왔던 임금해석을 뒤집었기 때문.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 혹은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말한다. 하루 근로시간이나 하루 근로일 등에 대해 지급하는 통상적인 임금액으로, 매달 받는 월급이 아닌 휴일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 해고예고수당 등을 계산할 때 기준으로 쓰인다.
대법원은 우선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 "상여금은 근속기간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지지만,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노사가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더라도 이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또 여름 휴가비와 김장보너스, 선물비 등 각종 복리후생비에 대해서는 "지급일 기준으로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지만 퇴직자에게도 근무일수에 비례해 지급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논란
=수십년간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던 노사합의가 무효화되면서 기업들은 노사관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치는 판단이라며 우려를 표현했다.
또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초과근로수당 등 각종 가산임금을 산정하는데, 가산임금과 더불어 퇴직금 등 전반적인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경영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22일부터 6일간 대법원 판결이 기업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대기업 138개사, 중소기업 162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인건비 상승이 예상될 것이라고 답한 기업이 전체 응답기업의 86.1%에 달했다.
이들 중 41.3%는 인건비가 10%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어, 이번 판결로 인해 경영악화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대응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40%가 임금체계를 조정하겠다고 답했으며, 초과근로수당을 최소화하겠다는 기업도 20.4%에 달했다.
경영진에서 우려를 나타냈다면 노동계는 진작 나왔어야 할 당연한 판단으로 보고, 대법원의 통상임금 범위 확대 판결에 대해 환호했다.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은 오랜시간 근무하고도 초과수당 등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동안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될 빛이 보인다며 수당 현실화의 가능성을 꿈꿨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에서도 "당연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통상임금 논란에서 자유로운 연봉제로의 전환을 꾀하거나, 초과수당에 대한 부담 등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면서 일시적으로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중소기업 손해 커
=이번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대기업보다도 중소기업의 부담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대표 및 임직원 3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9일부터 10일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기업경영에 부담이 있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63.7%에 달했다. 인건비는 6.7%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경영악화를 우려하는 중소기업 역시 63.4%로 조사됐다.
전체 기업의 40%가 임금체계를 조정하겠다고 답한 반면, 중소기업의 70%는 임금구조 개편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개편의 어려움에 노사갈등이 가장 큰 비중(44.4%)을 차지했지만, 개편을 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임금 저하가 어렵다는 중소기업이 38.9%나 됐다.
이렇듯 중소기업의 부담이 더 커지면서 중기중앙회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임금체계 개편에 도움을 주기 위해 통상임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은 성급한 근로시간 단축제도?
중소기업들은 통상임금 논란의 여파에 또다른 혼란이 밀려온다고 외치고 있다.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 고용률을 높인다는 취지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
중기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산입 등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업계의견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당장 '인건비 부담 가중', '가동률 저하로 생산량 차질', '납품기한 준수 어려움', '구인난으로 인한 인력부족' 등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한숨을 짓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러한 우려에도 근로시간 단축을 반대하지 못한다. 하급심에서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이므로 가산수당을 2배로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데다 통상임금 파장과 같이 갑작스러운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돼 중복할증해야 할 경우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추가임금은 최소 7조5천909억원에 달하며, 앞으로 매년 1조8천977억원 가량의 추가임금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도 7조6천억원 가운데 66.3%에 해당하는 5조339억원 가량이 중소기업 부담분이라는 것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여기에 사회보험료, 퇴직금 등 간접노동비용과 임금상승률까지 감안한다면 기업의 부담은 훨씬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 혹은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말한다. 하루 근로시간이나 하루 근로일 등에 대해 지급하는 통상적인 임금액으로, 매달 받는 월급이 아닌 휴일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 해고예고수당 등을 계산할 때 기준으로 쓰인다.
/신선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