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인생을 산 한남자의 역경스토리
실화 기록한 소설 바탕 감동 두배
삶보다 생존에 무게 '진짜 삶' 꿈꿔
아카데미영화상 9개부문 후보 올라
미국·영국/134분
감독 : 스티브 맥퀸
출연 : 치웨텔 에지오포, 마이클 파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
개봉일 : 2014년 2월 27일.15세 이상 관람가.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은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과 함께 주목받는 세 작품중 하나다.
미국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함께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마치 사실주의 영화처럼 담담하게 시작하는 '노예 12년'은 별다른 꾸밈없이 정직한 화법으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메리칸 허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의 쓰나미속에 등장인물들이 인간성의 '회색지대'를 기웃거리는 이야기라면, '노예 12년'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내와 두 자녀. 뉴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지인에게 소개받은 백인들과 함께 워싱턴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과음후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족쇄에 묶인채 외딴 방에 갇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노섭. 자신을 가둔 낯선 백인에게 자유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돌아오는 건 세찬 채찍질 뿐이다.
남부 루이지애나까지 흘러들어 간 노섭은 농장주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농장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의 농장에서 12년간 비참하게 노예로서 일한다.
카메라는 자유인이었다가 인신매매를 통해 노예로 팔려간 노섭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닌다. '생존이 아니라 진짜 삶을 살고자 했던' 노섭이 포악한 횡포에 '삶보다는 생존'에 무게 중심을 두다가 결국 '진짜 삶'을 꿈꾸는 변화 과정을 정갈한 화면에 담았다.
맥퀸 감독은 아주 슬픈 장면조차 꾹꾹 눌러서 연출했다. 그렇다고 슬픔이 묻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힘든 노예생활에서 나오는 흑인들의 슬픔은 터져 나오는 울음이나 차오르는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답답하고 힘든 노예들의 상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맥퀸 감독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살랑이는 바람, 그림같은 석양, 수양버들을 한껏 늘어뜨린 나무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노섭의 비극적인 상황을 잇대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때의 고통은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역설의 깊이를 더한다.
134분에 이르는 긴시간을 한 호흡에 달린 관객들은 영화 말미에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게 될 것 같다. 끝부분에 나오는 떠돌이 베스(브래드 피트)의 '자유란 모든 것'이라는 대사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담겼다.
노섭을 연기한 에지오포의 탁월한 연기와 남들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얻는 악덕 지주 엡스를 연기한 마이클 파스벤더의 극악스러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영화는 골든글로브 작품상, 미국 제작자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으며 다음 달 2일 열리는 아카데미영화상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