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칠장사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로, 칠현산 자락이 여러 개의 영상사와 토채를 이루고 앞쪽으로 일자문성이 이어지는 천혜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성곽길 이어진 '죽주산성' 죽산면 일대 시원스런 풍광 펼쳐져
일자문성 위치 1천년 역사 '매산리석불입상' 눈길
봉업사터엔 '안성죽산리오층석탑·당간지주' 남아
비봉산 아래 '죽산향교'도 좋은 곳에 자리
유서깊은 고찰 '칠장사' 좌청룡·우백호 '명당중에 명당'


가는 곳마다 복(福)이 가득하고 성공과 승리의 기운이 넘치니, 풍수를 아는 이곳이 살기 좋은 땅이로다.

지난 안성편(4회·2013년 5월 9일자 9면 보도)에서 안성의 동부지역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해 다시 안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성 동부지역, 그 중에서도 죽산면 일대는 많은 역사의 흔적과 문화재들이 자리해 있어서 꼭 한 번 둘러봐야 할 곳이었다.

시원하게 뻗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와 일죽IC를 나오자 벌써 곳곳에 문화재를 안내하는 갈색 안내판들이 보인다. 빨리 보고 싶은 곳들이 많았지만, 일단 죽산면과 일죽면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죽주산성을 올랐다.
 
▲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당시 외적을 격퇴한 곳으로 유명한 죽주산성에 오르면 죽산면과 일죽면 일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죽주산성은 시원스러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오르는 길도 쉽고 편해서 근처 주민들이 자주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안내판이 세워진 산성입구에 다다르니 잘 정비된 성곽과 산책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해발 370m의 비봉산 자락에 돌로 쌓아 튼튼하게 만들어진 죽주산성은 고려 고종 19년(1232)에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후 임진왜란 때도 변이중 장군이 왜군을 물리치는 등 여러 차례 외적의 침입을 격퇴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죽주산성을 둘러보는 길은 성곽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두꺼운 성곽의 돌을 밟으며 걷는 느낌이 좋다. 동북쪽으로 난 성곽길을 잠시 오르니 눈앞에 본래 장대(將臺)를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돌들이 기다린다.

동쪽과 북쪽편이 훤히 트여 일죽면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다. 서남쪽으로는 비봉산 정상이 산성을 굽어보고 있다.

굽이굽이 난 산성길을 따라 죽주산성의 남쪽편에 다다르면 이번에는 죽산면 일대가 시원스럽게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가 눈앞을 뿌옇게 가리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산들이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죠. 면사무소와 향교가 있는 죽산면을 내려다보면 비봉산 자락이 북쪽편을 푸근하게 감싸고 남쪽이 훤히 트여 따뜻하고 안정돼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풍수적으로 좋은 곳에 마을 터를 잡아서 살았어요."
 
▲ 죽산면 매산리석불입상은 작은 일자문성 아래 풍수적으로 안정된 자리에 우뚝 서서 1천년 동안이나 마을을 지켜왔다.
죽주산성을 나와 유명한 봉업사터를 찾아가는 길에 잠시 '매산리 석불입상'(경기도유형문화재 37호)을 찾았다. 높이가 5m를 넘는 커다란 돌 미륵불이다.

미륵의 머리위에 커다란 보개(寶蓋)까지 얹어져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안내판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미륵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무려 1천년 전에 만들어져 그동안 마을의 안녕을 지켜왔다는 의미다.

"옛날 조상들은 이런 미륵을 모실 때에도 풍수를 따졌어요. 이곳도 뒤쪽으로 비록 크지는 않지만 일자문성이 자리해 있고, 산자락을 뒤로 하고 앞이 트인 아늑한 자리에 미륵을 모셨어요. 요즘 사람들이 커다랗고 중요한 건물을 지으면서도 풍수를 따지지 않아 결국 어려움을 겪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됩니다."
 
▲ 봉업사터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국찰이었던 봉업사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미륵불을 뒤로 하고 산모퉁이를 돌아 마을쪽으로 가자 곧바로 오른쪽에 봉업사터가 나타난다. 봉업사(奉業寺)는 절 이름 그대로 고려가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해 세운 국가사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영정이 봉안돼 매년 고려 왕실에서 선왕에 대한 예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옛 고려시대에 이곳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조선시대에 폐사되어 폐허로 남아 있다가 1966년 공사 도중에 여러 유물이 발견되면서 실체가 확인됐다.

큰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봉업사터는 낮은 철제 난간으로 둘러친 곳에 석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당초 사찰의 규모는 훨씬 넓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재 보호용 철책은 석탑과 당간지주 부근 일부에만 쳐져 있어 더 아쉬움을 주었다. 봉업사터 내에 당당하게 서 있는 안성죽산리오층석탑은 보물 제435호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산중이 아닌 평지에 커다란 절들을 많이 지었지요. 하지만 평지에 있다고 풍수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에요. 이곳 절터도 비봉산과 죽주산성 자락이 든든하게 주산 역할을 하고, 멀리 앞쪽으로 산자락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감싸안고 있죠. 특히 절터쪽에서 보면 죽주산성이 영상사를 이루면서 좋은 기운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 비봉산 자락 아래에 자리해 있는 죽산향교는 좌청룡·우백호가 잘 품어안은 좋은 곳에 자리해 있다.
봉업사터를 떠나 북쪽으로 마을을 지나자 비봉산 산자락 아래 죽산향교가 자리해 있다. 죽산향교 역시 뒤쪽의 비봉산을 주산으로 놓고, 왼쪽으로 청룡이 휘감고 오른쪽으로 백호가 길게 눈앞까지 이어진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광 선생은 "이렇게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안녕을 기원하니 예부터 좋은 일이 많았을 것"이라며 "안성 일죽·이죽(지금의 죽산)·삼죽 일대가 예부터 이름이 났던 것은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죽산향교를 떠난 취재팀은 이번 안성 둘러보기의 하이라이트 격인 칠장사(七長寺)로 향했다. 칠장사는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찰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안성지역의 명소이기도 하다.

칠장사에 보존된 국보 제296호 칠장사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과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는 이 사찰의 역사와 위상을 짐작케 한다.

칠장사 바로 아래 주차장에 내리니 석축 위에 고풍스러운 누각이 방문객을 반긴다. 경내에 들어서니 묵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예사 사찰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취재팀을 보고 나이 지긋한 문화재해설사가 얼른 따라붙어 칠장사의 역사를 술술 이야기해 준다. 칠장사와 칠현산의 이름 유래가 담긴 혜소국사 이야기,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이곳에서 임꺽정에게 무술과 글을 가르친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장원급제를 했고 그 때문에 지금도 많은 수험생과 부모들이 이곳을 찾는 이야기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문화재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둘러본 칠장사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풍수적으로 명당 중 명당이다. 주산인 칠현산 자락이 팔을 뻗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는데, 일부러 깎아 놓은 듯 적당한 높이로 사찰을 품어 안으며 곳곳에서 영상사와 토채와 일자문성을 이루고 있다.

멀리 앞쪽으로 마치 그림을 그린 듯 솟아있는 영상사도 일품이다. 언덕을 조금 올라 서 있는 혜소국사비에서 본당쪽을 내려다보니, 꼭 맞는 터에 오밀조밀 들어앉은 대웅전과 법당들이 더할 나위 없이 안정감을 준다.

"여러 사찰을 다녀봤지만, 칠장사는 올 때마다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감탄을 하게 한다"고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 조광 선생은 "자연 속에서 풍수의 이치를 알고 잘 활용한 이곳 사람들의 지혜를 칭찬하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말로 안성 둘러보기를 마무리 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