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입사 '재단 역사' 산증인
작가의삶 수업 명성찾기 집중
韓문화 관심 "교류 더 있길"


스페인 말라가에서 온 큐레이터 마리오 비르힐리오 몬타녜스 아로요(Mario Virgilio Montanez Arroyo·사진)는 피카소재단의 25년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이다.

언제부터 피카소 재단에서 일했냐는 질문에 한참 세월을 꼽아보더니 25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피카소재단은 지난달 26일 설립 26년을 맞이했다.

마리오는 피카소 재단이 문을 열고 처음 뽑은 신입직원이었다. 당시 그는 23살이었고, 12명의 파릇한 20대 청년들이 그와 함께 '피카소 구하기'에 나섰다.

"프랑코 정권에 반대했던 피카소는 프랑스로 망명을 했어요. 이후 피카소는 공식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조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죠. 때문에 우리 윗세대는 피카소를 조국의 배신자라고 교육받았어요. 그래서 재단이 처음 생겼을 때는 스페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의 고향인 말라가 사람들조차 피카소를 좋아하지 않았죠. 초기 재단은 피카소의 명성을 되찾는데 노력을 집중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에 가서 피카소의 삶과 작품에 대해 수업을 했어요. 학교 밖에서도 지역 사람들과 만나 피카소에 관한 토론과 대화의 자리를 많이 가졌죠. 지금은 스페인을 포함한 전세계인이 피카소를 사랑하고, 우리 모두 뿌듯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망명중에도 여름이면 말라가 해변을 찾아 수영을 즐겼다. 프랑코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대의 천재 예술가의 불법 입국을 묵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에서 국문학, 그러니까 스페인어를 전공한 마리오는 초기에는 예술 비평을 주로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큐레이팅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150개 전시에 참여했고 미국, 프랑스, 체코, 아르헨티나, 페루, 한국까지 20개국에서의 전시를 전담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보였다.

"스페인에서는 북한과 관련된 뉴스를 많이 접할 수 있어서 북한의 사정을 오히려 한국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북한과 한국이 이렇게 많이 다른 것을 보고 놀랐죠. 침략과 전쟁, 민주화, 경제성장 등 다이내믹한 역사를 가진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예술적으로도 더 많은 교류가 있기를 바랍니다."

/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