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 1923~1924년 강화도 '하별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한 것으로 돼있다. 또 1951년 월북해 산업예술극단·흥남질소비료공장·국립출판사 등에서 일했으며 1953년 겨울 숨을 거두었다고 나온다.
강화 향토사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하별학교'는 '합일학교'를 잘못 기록한 것 같다는 의견이다. 합일학교(강화읍 신문리 소재, 현 합일초등학교)는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다.
1901년 4월 '잠두의숙'으로 설립돼 합일보통학교(1909년), 강화 합일학교(1924년), 합일심상소학교(1938년), 강화합일학교(1941년), 합일초등학교(1993년) 등으로 교명이 변경됐다.
진우촌이 합일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했을 것으로 뒷받침하는 진우촌의 시 한 편도 있다. '대흥정(大興亭) 잔디에서'다.
'고요하고도 깊은 밤이외다/ 세상은 다 이불에 덮여서 잠들어 있는데/ 사사로이도 마을의 등불은/ 자지도 않고 별들과 이야기합니다/ 그때에 나의 가슴에서는 깊이깊이 숨어있던 사랑의 구슬이/ 가만가만 굴러나와서/ 당신 가슴으로 가려합니다'
강화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대흥정은 1788년 강화유수 송재경(宋載經)이 주민들과 함께 만든 활터로 시인과 묵객이 드나들던 곳이다. 1950년에 무너져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대흥정 자리는 합일학교에서 가깝다.
강화교육지원청과 합일초교에는 1960년대 이전 교원 명부가 없다.
진우촌은 1922년 1월 서울 출신 백용자와 결혼했다 이듬해 4월 이혼하고, 1942년 4월(입적 기준) 김필노미와 재혼했다. 진우촌은 1949년 발표한 수필 '불두화'에서 아내 김필노미가 1947년 봄에 숨졌다고 적었다.
그나마 언론인 고일이 '인천석금'에서 진우촌의 결혼 얘기를 남겼다. 고일은 '극작가 진우촌 군이 인천각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했었고, 광복후 상처(喪妻)해서 동양헌에서 또다시 결혼식을 올렸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