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대 국가들이 신성시 했던 오서산은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이 일품인 산이다. |
'서해안 최고봉' 뱃사람들 등대역할 톡톡
인근 광천 새우젓 등 '오서삼미(三味)' 일품
상담마을 계단 진땀… 하산땐 보령쪽 추천
역사속에서 오서산은 삼국사기에 오서악(烏西岳)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가차원의 천제를 올렸던 곳으로 대사, 중사, 소사 중에서도 대사에 속할 만큼 영산으로 추앙하던 산으로 백제부흥운동의 정신적 중심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태양 안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살고, 신의 사자로서 천상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라는 우리민족의 태양숭배사상이 묻어났던 산이었던 것을, 일제강점을 거치면서 까마귀산으로 비하해 불리게 된 것이다. 근대에선 서해를 굽어보는 산 중에 으뜸인 산으로 뱃사람들로부터는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평야에서 번쩍 눈에 띄게 솟은 산은 인내심을 요구하고 적잖은 노력을 감수해야 함을 말해주듯 서 있다. 그래서인지 솟구친 산비탈을 헤집고 오르는 이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준다. 그래도 매년 가을이면 억새의 향연을 찾아드는 사람들로 온 산이 몸살을 앓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산악회의 연중 산행계획에 한두 번은 오르내렸을 대상지로 인기가 높은 데는 인근 광천읍의 다양한 해산물의 향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광천은 고려시대부터 서해의 해산물을 가득 실은 배들이 집결하던 장소였다. 그러던 것이 조선말기부터는 옹암포(독배마을)에서 젓갈시장이 형성되어 1970년대엔 항구가 미어터질 지경으로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오서 삼미(三味)'라는 말이 있다.
광천의 새우젓, 광천 맛김, 남당항 대하를 일컫는 말인데 근래엔 새조개와 주꾸미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하니 녹록지 않은 바닷가의 삶이라도 부러울 지경이다. 현재는 30여개의 옛 폐광을 개조하여 젓갈을 숙성 보관, 생산하고 있는데 이것의 향과 맛이 전국에서 으뜸이다 보니 산행은 뒷전이 되기 일쑤다.
![]() |
"여기 계단이 이렇게 많다는 얘긴 왜 안 했어." 수화기 너머로 질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지난 가을의 일이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공존하는 산행지로 추천해준 오서산을 올랐던 분이 산악회원들의 불만 끝에 전화를 한 것이다.
일반적인 등산로인 상담마을 주차장에서 정암사를 통해 오서산 정상의 너른 억새밭을 보고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선택하여 주었는데, 알고 보니 2012년에 홍성군에서 3억여원을 투입하여 680여개나 되는 계단길을 만들어 놓고 만 것이다. 하산할 때 무릎이 너무나도 아파서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 후론 홍성군에서 올라 보령쪽으로 하산하는 등산로를 추천해 주었다. 사정은 다른 산악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암사 오른편의 기존 코스에 생긴 계단은 산악회의 외면을 가져왔고 인근 상가의 매출은 눈에 띄게 줄어만 갔으며 아예 산행지를 다른 지역으로 바꾸는 일이 늘어만 갔다.
궁여지책으로 정암사 안마당을 통과하여 산신각 앞을 통해 능선으로 이르는 코스를 개방하여 등산객을 유도하고 있지만 이곳 또한 상당히 가파른 구간으로 평지가 거의 없는 길이다.
17년 역사의 산악회를 따라 상담주차장에 내려 마을을 가로질러 오서산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필자는 주저없이 정암사 산신각 뒷길을 택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대부분의 산악회원들은 계단을 통해 오르도록 두고 얼마나 시간차이가 나는지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만만치 않은 가파름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하였다.
![]() |
오서산의 능선은 민둥산이다 보니 햇살이 강한 날엔 속수무책이다. 그늘 하나 없던 산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정자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으나 2010년 태풍의 영향으로 파손되어 지금은 광장과도 같은 목재데크가 그 자릴 차지하고 있다.
해질녘의 서해를 바라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오서산의 명물인 억새를 보존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위안이 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구조물은 기분좋은 추억으로 만들기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억새가 없는 곳엔 진달래의 꽃망울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억새의 물결만큼이나 황홀한 풍경을 등산객들에게 선사해줄 것이다.
그리고 하산길은 무릎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계단을 피하는 것이 좋으므로 정암사 방향으로 올랐다가 보령쪽의 성연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것을 권한다.
/송수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