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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동백지구 개발로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남양홍씨 묘역. 멀리 앞쪽으로 산 정상이 평평한 '토채'가 자리해 있지만 아파트들에 가려 아쉬움을 준다. |
기흥 중동·동백 남양홍씨 묘역
일자문성·청룡백호 다 끊어지고
아파트숲 막혀 애초모습 사라져
죽전 김세필家는 우측 백호만 살아
가문 융성 이끌어주는 형세
시청사 너무높아 나쁜기운 다 맞고
도시 복판 가로지른 '용인 경전철'
주변 상가·주택 황폐화 우려
"눈앞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후손에 남겨줄 것은 남겨줘야"
"선조들은 풍수를 보고 명당을 찾았으나, 후손들은 욕심에 눈 멀어 풍수를 버리는구나."
용인시는 이제 인구 100만명을 눈앞에 둔 거대한 도시가 됐다. 지난 3월말 현재 용인시 인구는 96만1천여명. 100만명까지 채 4만명도 남지 않았다.
지난 1993년까지 인구 20만명을 넘지 못했던 것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성장이다.
이런 엄청난 속도의 성장에는 그만큼의 엄청난 개발이 뒤따랐다. 특히 수지구와 기흥구 일대는 지난 20년 사이에 논과 밭, 숲 등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와 상가가 빽빽하게 들어차면서, 우리나라 도시개발과 부동산 열풍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한때 '부동산 투자로 떼돈을 버는 동네'로 여겨지며 동경의 대상이 됐던 이곳. 그러나 최근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몰아치면서, 이곳의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늘 사람의 욕심이 문제예요. 좋은 산과 좋은 물이 있던 곳을 갈아엎고 콘크리트 숲을 만들어 놓으니, 기의 흐름이 끊어져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개발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집을 짓지 말아야 할 곳까지 마구잡이로 집을 지어놓았으니, 앞으로 어려움에 빠질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될 따름입니다."
용인시 기흥구 중동, 동백지구에서도 좋은 아파트와 고급 단독주택들이 몰려있다는 곳에 남양홍씨(南陽洪氏) 판중추공파(判中樞公派) 시정공(寺正公)문중의 묘역이 자리해 있다.
남양홍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씨중 하나로 꼽히는데, 조선중기 무렵에 남양홍씨 판중추공파 후손들이 용인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남양홍씨가 용인의 세거성씨로 떠오르게 됐다.
커다란 문중의 가문답게 용인의 주산중 하나인 성산(城山)에서 뻗어내린 맥을 타고 조성된 시정공 문중의 묘역에는 시조(始祖)인 홍제(1533~1635)의 묘를 시작으로 후손들의 묘가 단정하면서도 위엄있게 자리해 있다.
"풍수적으로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잘 잡았어요. 맥도 좋고 눈앞에는 일자문성이 길게 이어지네요. 아마도 처음 묘를 쓸때는 청룡과 백호도 잘 휘감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청룡과 백호도 모두 끊어지고, 일자문성도 깨어졌네요. 눈앞을 커다란 아파트들이 막아섰으니, 편안함이 사라지고 답답한 위압감마저 느껴집니다."
조광 선생은 묘역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묘역에 서서 앞과 좌우를 둘러보니 그럴만도 했다. 묘역 정면에는 커다란 아파트 숲이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뻗어올라가 시야를 가렸다.
정면의 아파트들 사이로 멀리 토채가 자리해 있지만, 역시 콘크리트 벽에 시야가 가로막힌다. 풍수에서 토채는 묘의 주인과 후손들이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에 오르거나 이름을 떨치도록 하는 산이다.
토채와 묘역 사이, 앞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낮은 언덕이 가로로 죽 이어져 일자문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역시 건물들이 중간을 뭉턱 잘라내 애초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묘역 왼쪽으로 내려가면 묘역입구부터 산쪽으로 죽 올라가며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동백에서도 손꼽히는 동네인데, 조광 선생은 "묘역의 청룡까지 잘라먹으면서 조성된 주택지가 골짜기를 타고 들어갔어요. 이렇게 좋은 집들을 왜 이런 곳에다가 썼는지 기가 막힐 뿐이에요"라며 혀를 찼다.
경주김씨인 김세필과 그 자손들은 조선중기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명문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묘역은 가문의 번성을 증명하듯 돌계단과 석물들로 위엄있게 조성돼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 묘역 주변도 아파트와 학교, 상가 등이 주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본래의 기운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시청 본건물만 지하 2층, 지상 16층, 연면적 4만4천800여㎡ 규모에 달하는데다가 유리로 제작한 외벽 등으로 인해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호화 낭비성 관청건물'의 사례로 지적을 당하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건물이기도 하다.
"사실 용인시청이 들어선 곳은 풍수적으로 아주 좋다고도 볼 수 없지만,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곳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용인시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은 땅 보다는 건물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광 선생은 용인시청 청사처럼 건물을 크고 높게 짓는 것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렇게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나홀로 독불장군처럼 선 건물들은 대개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주변의 나쁜 기운을 혼자서 맞게되고, 좋은 기운이 건물안에 모여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요즘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이유로 자치단체들의 청사나 대형 택지개발지구의 중심건물들을 이렇게 크고 높게 짓는 것이 유행인데요, 풍수에서는 이런 것을 좋지 않게 봅니다.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울려 서로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좋은 기운이 머물게 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법이지요."
"용인경전철이 용인시에 얼마나 재앙이 되고 있습니까. 단지 경전철의 운영적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경전철이 가져올 또다른 문제들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경우 기의 흐름을 가로막아서 주변의 집이나 상가들까지 어려움에 빠뜨리게 돼요. 여러 도시에서 커다란 고가도로 아래나 주변이 자꾸만 황폐화 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용인시 둘러보기를 마무리하면서 취재팀은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꼈다. 조광 선생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모양새만을 생각하지 말고, 조금 부족하거나 불편하더라도 우리 후손들을 위해 남겨줄 것을 남겨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충고로 취재를 마무리 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