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이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 선언 및 결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산소탱크' 박지성(33·에인트호번)이 25년 동안 질주해온 정든 그라운드를 뒤로 하고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은 14일 수원시 영통구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은 제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것을 전하게 됐다"며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을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분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눈물이 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그만큼 축구 선수로서 미련이 남는 게 없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아버지 박성종 씨, 어머니 장명자 씨와 동석한 박지성은 또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1990년 세류초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박지성은 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교토상가(일본)-에인트호번(네덜란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퀸즈파크 레인저스(QPR·잉글랜드)-에인트호번으로 이어진 화려한 축구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의 은퇴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2011년 1월 전격적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박지성은 그동안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고생을 해왔고, 이 때문에 적당한 현역 은퇴 시기를 놓고 고심을 해왔다.

이런 가운데 박지성은 원소속팀인 퀸스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잉글랜드)가 2부리그로 강등된 뒤 지난 시즌 '친정팀'인 에인트호번으로 임대돼 '베테랑의 품위'를 보여줬지만 끝내 세월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QPR와 계약이 1년 남아 있는 박지성은 최근 토니 페르난데스 QPR 구단주와 만나 은퇴 문제를 논의했고, 마침내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허락을 받아 정든 유니폼을 벗기로 결심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지만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작은 체구 때문에 아버지가 개구리즙을 먹이며 체력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세류초 6학년 때 제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수원공고를 졸업할 때까지 그에게 관심을 주는 대학팀은 없었다.

몸집이 작았을 뿐만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 최악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 평발을 가진 박지성을 선뜻 선택할 대학팀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에 입학해 김희태 감독의 지도를 받은 박지성은 마침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팀과 치른 평가전에서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눈을 사로잡으면서 스타탄생의 서막을 올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발탁된 박지성은 이듬해 일본 J리그 교토상가로 이적하면서 프로선수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놀라운 체력과 돌파를 선보이며 스타 반열에 올랐고,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에인트호번에 입단하며 '유럽파'로 성장했다.

마침내 2005년 세계적인 명문 클럽인 맨유에 입단,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라는 훈장을 달았다.

맨유 시절 뛰어난 활동량으로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 '두개의 심장' 등 다양한 칭호를 받은 박지성은 무릎 부상 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잘 견뎌내면서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태극전사로서 박지성의 활약도 대단했다.

2000년 4월 5일 라오스와 아시안컵 1차 예선을 통해 처음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박지성은 일본과의 2011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통해 A매치 100경기(13골)를 채우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박지성은 비록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에인트호번의 일원으로 오는 22일 수원 삼성, 24일 경남FC와의 친선전에 출전해 국내 팬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