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출신' 박지성이 14일 오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열린 '은퇴 선언 및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은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강승호기자
"무릎 더 버티기 어려워 결정"
평발 악조건에도 유럽 개척
A매치 100경기 13골등 활약


'산소탱크' 박지성(33)이 25년동안 질주해 온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박지성은 14일 오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을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며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릎이 다음 시즌을 버티기에는 어려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박지성은 1990년 세류초 4학년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뒤 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교토상가(일본)-에인트호번(네덜란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퀸즈파크 레인저스(QPR·잉글랜드)-에인트호번으로 이어진 화려한 축구 인생을 마무리했다.

이번 은퇴 선언은 예견된 일이었다. 2011년 1월 전격적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박지성은 그동안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고생해왔고, 은퇴 시기가 늘 고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QPR와 계약이 1년 남아 있었으나, 최근 토니 페르난데스 QPR 구단주와 만나 은퇴 문제를 논의했고, 마침내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허락을 받아 정든 유니폼을 벗기로 결심했다.

박지성은 수원 세류초 6학년때 제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수원공고를 졸업할 때까지 입단을 제안하는 대학이 없어서 진학을 놓고 고민했다. 몸집이 작았을 뿐만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 최악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 평발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에 입학한 그는 김희태 감독의 조련을 받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 뒤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발탁된 박지성은 이듬해 일본 J리그 교토상가로 이적하면서 프로선수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고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놀라운 체력과 돌파를 선보이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박지성은 월드컵 후 당시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에인트호번에 입단해 명성을 쌓았고, 2005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문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뛰어난 활동량으로 '3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 '2개의 심장' 등 다양한 칭호를 받았다.

박지성은 국가대표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0년 4월5일 라오스와 아시안컵 1차 예선을 통해 처음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일본과의 2011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통해 A매치 100경기(13골)를 채우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김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