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安묘지 산비탈에도 밤벌레가 우느냐,/너는 죽어서 그곳에 육신이 슬고/나는 살아서 달을 치어다보고 있다.//가물에 들끓는 서울 거리에/정다운 벗들이 떠드는 술자리에/애닯다/네 의자가 하나 비어 있고나.//월미도 가까운 선술집이나/미국 가면 하숙한다던 뉴요크 할렘에 가면/너를 만날까./있다라도 '김형 있소'하고/손창문 마구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네가 놀러 와 자던 계동집 처마끝에/여름달이 자위를 넘고/밤바람이 찬 툇마루에서/나 혼자/부질없는 생각에 담배를 피고 있다.//번역한다던/리처드 라잇과 원고지 옆에 끼고/덜렁대는 걸음으로 어델 갔느냐./철쭉꽃 피면/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좋아하던 존슨 부라운 테일러와/맥주를 마시며/저 세상에서도 흑인詩를 쓰고 있느냐./해방 후/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땅 진흙밭에/너를 묻고 온 지 스무날/詩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시인 김광균(1914~1993)이 흑인시인 배인철을 인천 주안 공동묘지에 묻고 나서 쓴 '詩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란 조시(弔詩)이다. 시인은 배인철이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읊었다.

그리고 배인철과의 정감 넘치는 기억을 달에 실려 보내고 있다. 시인은 또 흑인시가 왜 하필이면 인천땅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도 풀어낸다.

해방은 되었지만, 여전히 외세에 점령당해 사람이 죽어가야 했던 인천에서 약소 민족의 슬픔을 흑인을 통해 노래하던 배인철은 해방공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짧디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꽤나 굵은 울림을 던져 놓고 갔다.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