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1970년대 포크가수 박인희가 부른 노래 '세월이 가면'. 이 노래는 1956년 이른 봄 명동의 한 주점에서 서른살의 시인이 즉석으로 만든 시에 곡조를 입혀 세상에 나왔다. 그 시인은 바로 명동의 '댄디보이'라고 불렸던 박인환(朴寅煥·1926~1956)이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남기고 며칠 뒤 세상을 떠났지만, 그 노래는 지금껏 그대로다.

박인환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노랫말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미군정과 한국전쟁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정세를 살았던 그에게 시는 사회와 맞서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는 문학의 현실참여를 시도했고, 여러 작품을 통해 그의 신념을 알리고자 했다. 미군정기 어느날 가난한 인천항의 모습을 본 박인환은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인천항의 풍경이 언젠가 사진잡지에서 봤던 영국 식민지 홍콩의 이미지와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박인환은 1947년 4월 '인천항'이라는 시를 통해 미군이 점령해버린 인천항의 서러운 현실을 고발한다. 지금 시인 박인환의 이름은 점점 잊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가도 그가 인천에 남긴 시 한 편은 우리 가슴에 남으리라.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