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없이 태어난 두살배기 천사
한쪽 시력잃은 아빠는 일용직
임신때 병 아직 앓고있는 엄마
의료비 지원 마저 없는 상태

고시원 생활 13세 소녀의 신음
엄마·동생과 함께 비좁은 일상
같은층 외국인 노동자에 불안
보증금 부족 이사 꿈도 못꿔


사각지대. 사전의 뜻은 '효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 정부와 사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 곳에 우리 아이들이 방치돼 있다.

복잡하고 불합리한 제도의 틀 속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동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그림자처럼 오늘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

■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민재(가명·2·여)는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특별하다. 태어날 때부터 양 귀(耳)가 없이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 귓바퀴가 없는 병인 선천성 소이증인데, 민재는 귓바퀴뿐 아니라 귀 자체가 없어 사실상 무(無)이증에 가깝다.

선천적인 장애로 민재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수면검사를 통해 측정한 청력은 약 80~100dB. 기차가 지나가야 겨우 들리는 정도다. 하지만 민재는 눈에 띄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청력검사를 해서 정확한 장애정도를 판단해야 하는데 아직 나이가 어려 판정이 불가하다는 이유다.

더구나 민재 아빠와 엄마는 20대 초반의 어린 부모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빠와 엄마는 대학을 자퇴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민재아빠는 지병으로 우측 시력이 소실됐지만 아이 양육을 위해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재 아빠 수입의 120만원과 양육수당으로 나오는 20만원으로는 월세에 각종 공과금, 아이 분유값, 기저귀값 등 생활비 대기도 벅찬 상황.

게다가 엄마는 임신 당시 겪은 자궁경부수축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우선이라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민재아빠는 "처음엔 내가 너무 엉망으로 살아서 그런가 싶어 반성도 많이 했다. 지금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건 주기적으로 검사·치료를 받아야 하는 민재의 치료비와 향후 민재의 귀 형성 수술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민재부모의 부양능력 탓에 수급자 책정도 어려워 의료비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다.

■ "안심하고 일 나갈 수 있는 작은 집이라도 있다면…."

정민(가명·13·여)이네 세 가족은 도내 한 도시의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이혼 후 엄마와 정민이, 초등학교 2학년인 여동생이 함께 9.92㎡ 남짓한 고시원방에서 모든 생활을 한다. 빨래를 걸 공간도 없어 복도 밖에 빨래를 걸어둔다. 좁은 공간도 문제지만, 제일 두려운 건 안전이다.

여자들만 살고 있어 불안한 마음에 속옷도 걸어두지 못한다. 일을 해야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지만, 엄마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고 있다. 딸만 둘을 두고 불안한 마음에 도저히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직장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같은 층에는 중국, 동남아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속옷차림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상가건물이라 술먹고 취한 사람들도 많아 딸 키우는 입장에서 솔직히 너무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정민이를 위해서라도 엄마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엄마는 LH에서 제공하는 전세임대를 신청했고 후보자로 선정이 됐지만 아직까지 집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보증금 때문이다.

엄마는 "일단 보증금으로 400여만원이 필요한데, 적당한 집을 찾아도 돈이 없어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운동에 재능이 있는 정민이를 위해 지금 다니는 학교에 계속 있어야 하지만, 학교 인근의 집은 보증금이 더 비싸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엄마는 "우리 아이가 재능을 가진 건 내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절망적이기도 하다"며 "눈 딱 감고 아이들 돌보기보다 돈만 벌러 나갈 수도 있지만, 결국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일하는 것 아니냐"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아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이 우선이다"고 덧붙였다. 민재와 정민이는 지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