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서류'에 포기하고 집으로
사각지대 아동들 원인 부모탓 많아
후원자, 누굴돕는지는 관심도 없어
아이에 행복주려면 정서적 접근필요
부족한 정보 외국 모델 활용 어려워
지난달 20일 경인일보 본사에서 경인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공동주최로 '사각지대 아동 발굴 및 지원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는 여인미 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장의 진행으로,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김은정 소장과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김형모 교수, 수원시청 사회복지과 임유정 팀장, 율목종합사회복지관 이경석 관장, 평택 원평드림지역아동센터 서경숙 센터장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인미 본부장(이하 여): 사각지대는 흔히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을 뜻한다. 사각지대 아동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토론회를 통해 사각지대 아동들이 어떤 아이들이고, 어려움은 무엇인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현장에서, 학계에서 접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먼저 사각지대 아동들은 누구인가.
김형모 교수(이하 김): 최근들어 복지사각지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보통 공공부조를 받지 못하는 계층을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말한다. 사각지대 아동도 마찬가지다. 공공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 국가 복지정책과 법, 제도 등에서 제외된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속한다.
주로 미혼모 가정의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위기가족의 아동들이 포함된다. 기초 수급자 가정의 아이들은 그래도 공공기관에 어느 정도 노출돼 있어 보호받을 수 있지만, 수급자 바로 윗계층에 있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빠지기 쉽다.
임유정 팀장(이하 임): 굳이 공공에서 놓치는 아이들만 사각지대 아동은 아니다. 요즘은 민·관이 함께 하는 복지사업이 많기 때문에 민관 둘 다 인지하지 못하는 아동들도 굉장히 많다. 또한 기초수급자 가정의 아동들이라고 할지라도 사각지대 아동이 될 수 있다. 왜냐면 경제적 지원만 받을 뿐이지, 어려운 형편 탓에 수급자 가정의 아이들도 가정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김은정 소장(이하·소장): 어린이재단 연구자료를 살펴보면 전체 약 970만명 아동들 가운데, 28만여명이 기초수급권 가정의 아이들이고, 국가에서 지원받지 않는 이른바 차상위 저소득 빈곤가정으로 추정되는 가정의 아이들이 67만여명이다. 기본적으로 67만명의 아이들이 사각지대로 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아이들에 대해 질적조사를 해보면 대부분이 인터넷 중독률이 매우 높고 우울증도 심하다. 부모가 가정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보살피는 시간이 너무 짧다보니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낮은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 사각지대 가정에 속한 아동들은 대표적으로 한부모 가정과 아까 말했던 미혼모가정, 그리고 다문화 가정일 경우가 많다. 이 가정들은 꼭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더라도 정서적 가정교육이 힘들다.
■ 왜 사각지대 아동들이 생겨나는가
서경숙 센터장(이하·서): 부모의 자존감이 너무 낮다. 사각지대 가정에서도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도 제도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며 포기해 버린다. 우리 센터에도 서류상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보니 부모가 결국 도움받으려다 포기하는 경우를 봤다. 아무리 부모들을 끌어내려고 해도 결국 부모의 의지가 없어 아이들이 방치되기도 한다.
임: 그렇다. 사각지대 아동가정의 큰 어려움은 부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실무자 입장에서 제보를 받고 직접 현장에 나가보면 부모들이 아이들의 어려움을 자각하지 못해 사각지대에 있으면서도 모를 때가 많다. 어른들은 힘들면 힘들다고 119에라도 전화하고 방법을 알지만, 아이들은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이경석 관장(이하이): 예를 들어 한부모 가정의 경우 정부로부터 매월 8만5천원 가량 수당이 나온다. 수당을 받는다는 것은 부모의 소득이 관에 노출이 된다는 것인데, 이 소득이 부모의 실제 소득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장실도 없는 집에 살고 있고,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살고 있어도 정보가 없기 때문에 사각지대로 빠진다. 이런 상황 자체를 부모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 가정의 아동은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서: 그렇다. 제도의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사각지대로 빠지는 아동들 중에 안타까운 점은 지역아동센터로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엄마나 아빠가 그냥 집을 나가버려 제도상으로는 한부모가정이 아니거나, 가정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지만,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경우 지역아동센터로 오고싶어도 오지 못한다.
우리 센터에도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지는 못하지만, 센터 자체에서 보살피고 있는 아이들이 꽤 있다. 도저히 길거리를 배회하며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서다.
이: 서 센터장님 말에 공감한다. 예전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발굴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밖에서 안으로 데리고 왔다는 말이다. 지금은 행정적인 절차가 너무 복잡해 그럴 여유가 전혀 없어졌다. 사각지대 아이들을 만드는 원인이다.
■ 사각지대 아동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임: 지인에게 어려운 가정의 아동을 후원하라고 권유하니, 후원은 선뜻 하겠다면서도 어떤 아이인지는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돈으로 도와주는 것만이 만능이 아니다. 우리 아이가 행복하려면 지금 이 가정의 아이도 행복해야 한다. 왜냐면 사각지대 가정의 아동도 결국 내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사실 복지사각지대 아이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들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한번은 신고가 들어와 현장을 나가봤더니,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자기가 싼 똥을 벽에 다 칠해놨더라. 이것도 일종의 학대다. 지금은 부모와 격리돼서 기관에서 보호받고 있다. 아이들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 동네 세탁소에서 제보해서 알게 됐다.
소장: 한국에는 외국의 좋다는 아동복지 서비스모델은 다 들어와있는데, 사실상 민관기관에서 오히려 어려운 아동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활용이 어렵다. 아직도 사회의 인식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저 도와준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투자한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아동지원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되고, 어려울 게 없다. 아주 작게는 안타까운 사각지대 아동을 발견했을 때 동사무소에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요즘 동사무소에 사회복지사가 없는 곳이 없다.
이: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하나되어 그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요즘 시민사회에서 마을만들기 운동을 하는 것도 공동체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 서로 돌봄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결코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리/=공지영·윤설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