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은 어렵다. 안타까운 마음은 굴뚝 같지만, 도무지 어떻게 도와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아서다.

의외로 두 눈과 팔·다리를 움직이면 어렵지 않다. 머리로는 어렵지만, 몸으로 움직이면 이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그리고 우리 주변엔, 몸을 움직여 내 이웃의 아이들을 돕는 일을 '일상'처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 "우리 이웃의 아이인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요".

조선족부부 딱한 사연
그냥 지나칠 수 없었죠


박금순씨는 일하다 알게 된 '아는 동생'의 사연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족인 동생네 부부는 부모님과 자녀까지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하지만 볕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에 월세 30만원을 근근이 내며 어렵게 살고 있다. 동생 부부는 고혈압, 갑상선수술 등 몸이 아파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할아버지가 월급으로 받는 130여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동생은 "워낙 어렵게 살아서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한국에서 잘살 수 있을지 걱정돼 잠도 안 온다"며 눈물을 보였다.

박씨는 "동 주민센터에 기초수급 신청하는 방법도 몰랐을 정도로 한국문화가 낯선 동생부부 밑에서 어린 아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까 봐 너무 걱정되더라"며 "내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순 없지만, 어린이 단체를 통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어 어린이재단에 제보했다"고 말했다.

아는 동생의 아들은 현재 어린이재단을 통해 교육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박씨의 제보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어린 아빠도 박씨의 따뜻한 관심으로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됐다.

고등학교 때 아이를 낳아,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세 아이를 혼자 양육하고 있는 A씨의 사연을 듣고 아이돌봄 서비스와 기초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어린이재단에 A씨 자녀들을 알렸다.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려고까지 했던 어린 아빠는 지금 카센터에 취직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다.

박씨는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이 사각지대 속에 방치돼 있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조금만 관심 가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무조건 부딪치세요. 직접 가서 보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아프리카 봉사활동 계기
수술치료 재능기부 나서


인터뷰 요청에 허일 원장은 잔뜩 긴장하며 몹시 쑥스러워했다. 대뜸 "제가 당연히 하는 일인데, 이런 것도 재능기부라고 할 수 있나요"라며 되물었다.

화성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허 원장은 몇 년 전 아내를 따라 떠났던 아프리카 봉사활동의 잔상을 잊지 못해 '돕는 일'을 시작했다.

허 원장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겪는 병이 큰 병들이 아니다. 조금만 고쳐주면 다시 밝아질 수 있는데, 그대로 방치되면서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안타까웠다"며 "한국에 와서도 장면들이 잊히지 않아 고심 끝에 어린이재단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만난 아이가 원이다. 원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어있는 합지증을 앓고 있었는데, 태어나자마자 기형이 심해 버려져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허 원장은 "우리나라에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재단 선생님들의 설명을 듣고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며 "원이를 처음 봤을 때 그 먹먹함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술 이후 웃지도 않고 구석에만 웅크리고 있던 5살짜리 여자아이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귀여운 9살 꼬마숙녀로 성장했다.

허 원장은 지속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허 원장은 "머리 속에서 생각만 하는 걸로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다. 무조건 가서 직접 보고 어려운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방 답이 떠오른다"며 "이왕 재능기부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주변 친한 의사들과 이런 식의 재능기부를 시스템화해서 하고 싶다"고 의지를 표했다.

■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 기부, 이제는 일상이 됐네요".

부모님 봉사하는 삶 보며
이웃 돕는게 당연한 일상

국제자선기구 활동가인 한비야씨가 나온 예능토크쇼를 보고 김기영씨의 삶은 바뀌었다. "한비야씨가 월드비전을 통해 전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월드비전에 전화했다. 그렇게 기부를 시작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김씨의 삶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적십자를 통해 평생 봉사를 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고, 고향에서 학원을 운영할 때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몰래 돕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기부를 시작하면서 이제 김씨는 다양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주변의 아이와 1 대 1로 자매결연을 하는 '혼자먹는 밥상'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는 아예 후원과 함께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씨는 "기부와 같이 '돕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한번 두번 횟수가 늘어나면서 누군가를 돕는 일이 몹시 익숙해졌고, 이제는 돕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더불어 김씨는 "내가 기부를 하게 된 것도 누군가를 돕는 삶에 늘 노출이 됐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학습이 된 것 같다"며 "덕분에 특별한 교육 없이 우리 아이도 같은 반 어려운 친구를 돕고 있었다"고 오히려 기부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많은 직장인이 기부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면 여유가 없다고 여긴다.

김씨는 "내 연봉이 올라가는 건 내 노력도 있지만, 나를 둘러싼 사회를 통해 가능한 일"이라며 "생각날 때마다 불쑥불쑥 기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생활이 돼 있을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