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면 누구나 '시란 무엇인가', '시는 왜 쓰느냐' 하는 질문에 늘 몰리게 마련이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 김차영(金次榮)은 시집 '부릅뜬 태풍의 눈'(1974)에서 "시란 삶의 의미와 똑같이 절대로 비구상적(非求償的)인 것이다. 그것은 구도자(求道者)가 고행을 통하여 얻어내는 아픔 속의 희열과 같은 느낌인 것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묻고 답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추상애로(抽象隘路)'는 제목 그대로 추상적이라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바람대로 프랑스나 영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더 유명해졌을까. 김차영의 작품세계를 깊게 알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대 시인 박인환은 김차영에 대해 "시에 있어서 모든 문화적인 체계를 조리있게 세우고 있다. 그리하여 철학도 얘기하고 사회학도 얘기하고 사랑도 하고 눈물도 흘린다. 조금도 이성의 동요를 느끼지 않고 있으며 흥분된 기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천상병처럼 유명해지고 싶지만, 천상병처럼 쉬운 시는 죽어도 못 쓴다던 그는 사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강화와 인천에 대해서만은 친절한 시인이었다.
역사와 문화의 고장 강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이면에 있는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았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옛 고려의 흔적을 '江都(강도)의 하늘'이란 시에 담기도 했다. 인천을 떠나 멀리 있어도 늘 인천 문화를 그리워하고 걱정했다.
/김민재기자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고향생각 평생 지우지못한 김차영
입력 2014-07-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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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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